지난 4월10일 한국과 북한은 똑같은 시간에 남북 합의서를 통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오는 6월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 조선 국방위원회 김정일 위원장과 상봉하게 되며 남·북 정상회담을 진행한다고 선포했다. 짐작도 하지 못한 이 큰 소식은 세계 여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분단 55년만에 처음 갖는 중대한 사건으로 그 성사는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자면 무엇보다도 최고 지도자들의 접촉과 대화가 절실히 필요하며 이와 같은 접촉과 대화가 없이는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반세기를 거치면서 한반도에서는 단 한번의 정상 회담도 없었다. 94년 김영삼 대통령·김일성간 대화 약속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성사되지 못했다. 한반도의 긴장과 대립은 지속되었고, 하나의 큰 문제 해결도 보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다.

때문에 남·북한 정부와 정당, 각계 인사들 그리고 국민 모두는 눈앞에 다가온 정상회담을 매우 소중히 여기고, 그 성공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본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다음 기회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며, 빨라도 김대중 집권 시대에는 무리일 것이다.

주변 국가들, 특히 주변 강대국들은 남북 정상회담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제 때에 성공하도록 협조해야 한다.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지역의 안정 및 발전에 좋은 역할을 하게 될 것이며, 주변 나라들의 이익에도 부합된다. 이는 주변 강대국들이 오래 전부터 기대해 왔다. 때문에 그것을 방해하거나 파탄시킬 아무런 이유도 없다. 만약 어느 한 나라가 자기의 ‘특수 이익’을 위하여 방해 활동을 한다면, 세계 여론의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받아 마땅하다.

호주 정부는 얼마 전 조선과 외교 관계를 회복시켰고, 태국은 조선의 아세안지역포럼(ARF) 가입을 지지하여 실제 행동으로써 남북 정상회담과 역내 평화를 지지했다.

한반도 문제는 50여년간 누적된 복잡한 문제로서 시간이 필요하며, 한번의 정상회담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하여 첫번째 회담은 쌍방이 모두 크게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 그리고 상호 협조와 양보를 거쳐 합의를 볼 수 있든가, 몇 차례를 거쳐 합의를 볼 수 있는 ‘해결 가능한 문제’로부터 시작해야 성사가 가능하고 용이하다. 만약 상대방이 아예 접수할 수 없는 문제나 접수하기 매우 힘든 문제들을 내놓고 상대방을 곤란하게 한다면 순조로운 정상회담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쌍방이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라면 곧 한반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문제, 상호 신뢰 관계 수립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문제, 남·북한 국민들의 고통과 아픔을 해소하는 문제 등이다.

지금 진행 중인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예비 회담의 순조로운 진전은 남·북한 당국자들이 이와 같은 문제를 잘 처리해 나가고 있음을 증명하며, 남·북이 외부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고 해결해야 할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본다.

필자는 지난 5월 10일 미국 국무부 고문 웬디 셔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 찰스 카트먼과 만났을 때 다음과 같은 소견을 피력했다. 첫째, 남·북 정상회담은 오기 어려운 기회이므로 소중히 해야 한다. 둘째, 주변 강대국의 적극적인 지지는 매우 중요하며 특히 미국의 지지는 빼놓을 수 없다. 셋째, 효과가 적은 정상회담일지라도 결코 회담이 유산되어서는 안된다. 넷째, 미국의 페리보고서 등 대북 정책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며, 미국이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한 희망이 있다. 이와 같은 견해를 얘기했을 때 셔먼 여사는 “한 교수의 견해는 김대중 대통령의 의견과 일치한다”고 지적했다.

한반도 문제의 원만한 해결을 위하여는 한국,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각 나라들의 노력이 필요하다. 양자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 즉 북·미간 문제, 북·일간 문제, 남·북 문제, 중·북 문제 등은 양자가 해결하고, 다자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다자간 협의로 해결하는 두 가지 형식의 동시 추진은 한반도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리=지해범기자 hbjee@chosun.com

한진섭

▲1937년 출생(조선족)

▲1960년 중국 인민대학 계획통계과 졸업

▲1964~88년 중국 사회과학원 세계경제정치연구소 아시아 태평양 연구실 실장

▲1983~85년 일본 통상산업성부 아시아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1988~97년 중국 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 동북아연구실 실장

▲1993~현재 중국 사회과학원 한국연구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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