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슷하면서도 다른’ 신선한 매력의 한국은 영화에서 식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일본 사회에 확산되기 시작했다. 신선함뿐 아니다. 한국은 현재 일본이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파워인 ‘현상 돌파력’을 지니고 있다. 일본이 “한국은 파트너”라고 말할 때, 그 속엔 한국의 파워를 통해 일본 자신을 보완하고 싶다는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시각에서 보면 한·일 관계는 정말 변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은 경제 위기 극복과 과격하게 비춰졌던 정치 정화 운동에 이어 그런 한국 특유의 변혁 파워를 또 한번 과시하는 계기였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국이 상상하기 힘들 만큼 충격을 받았던 일본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절실히 바라고 있다. 이런 일본의 당면 역할은 일·북한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한국의 파워에 기대해 남북 대화를 측면 지원하는 일일 것이다. 즉 일·북 관계 진척을 모색하면서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과 국제 대화 참가를 유도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다만 일·북 교섭엔 안보 문제와 일본인 납치 의혹 같은 난제가 많아 상당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일본에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경제 협력도, 설혹 남북 협력이 먼저 본격화되는 경우라도 수교 이전에 경협에 나서는 것은 힘들게 되어있다. 일본의 국민 감정 때문이다.

민간 차원도 과거 문제가 됐던 북한의 채무 불이행 문제가 여전한 만큼 민간 기업이 이니셔티브를 쥘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일부 업계에서 ‘배상금 비즈니스’(북한이 일본에서 받을 배상금을 겨냥한 비즈니스)에 관심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한계가 있는 시장이고 리스크를 감수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 한·일이 북한과 경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것은 많다. 우선 북한 지원을 둘러싼 다양한 지적(지적) 인프라를 정비해 공유하는 일이다. 세계 최대의 대외 원조국인 일본은 그동안 베트남·중앙 아시아 등의 이행(이행) 경제를 지원해왔다. 재정·금융 중심의 IMF(국제통화기금)형에 비해 고용·산업 같은 실물 경제 중심인 일본의 지원 시스템은 일·북 교섭이 타결돼 경제 지원이 시작될 경우에도 적용될 것이다.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도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이 한국의 경제 발전을 답습하기는 어렵다. 한국이 “일본이 북한에 원조하면 그로 인해 일본의 간섭을 부르진 않을까”라는 전통적인 회의를 갖고 있다면 그 불식을 위해선 넓은 시야에서 일본의 원조 체제를 숙지한 뒤 한국 스스로 일본에 대한 지적 영향력을 건설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다음으론 한·일 경제관계를 긴밀히 함으로써 일본이 자연스럽게 시장 제공과 자본 환류 기능을 하게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양국 연구기관이 연구 중인 자유 무역협정과 관련, 한국에선 자유 무역과 관세 철폐가 대일 무역적자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는 걱정이 강하다.

그러나 대북한 경제 지원을 시야에 넣을 경우 한·일 경제 관계의 강화는 한국 입장에서 양자 관계를 뛰어넘는 결정적 이점이 있다. 우선 북한이 수출 지향 경제로 전환할 경우 미국에 필적하는 한·일 공동시장이 옆에 있고, 그 시장에 접근이 보장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또 관세·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한·일간 조정에 의해 산업 분업 및 산업 협력이 이뤄질 경우 북한을 둘러싼 파트너로서 한국 기업의 존재 의미는 더 확대된다. 북한에 대한 엔 차관이 개시될 경우에도 한국이 일본과의 거래를 높은 수준까지 올려 놓는다면 엔 차관 관련 사업 진출도 용이해질 것이다.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에서 엔화가 어느 정도 유통되면 환율 리스크가 줄어 북한 비즈니스 리스크도 경감시킬 수 있다. 즉 남북 정상회담과 일·북 수교 교섭에서 파생될 북한과의 경협은 한·일 경제 관계에도 발전의 계기를 제공해줄 수 있다.

한·일간 경제 의존 관계에 정치가 개입하지 않고 ‘플러스·섬’ 게임이 펼쳐지는 한 한국은 한·일 관계를 대북한 경제 지원 부담을 경감시키는데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은 그럴 만한 기획력과 교섭력을 갖추고 있다.

/정리=박정훈기자 jh-park@chosun.com

◈ 후카가와 유키코

1958년 출생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졸업

한국 산업연구원·미국 컬럼비아 대학원 객원 연구원

일본 장은 종합연구소 주임 연구원

아오야마대학 교수

저서 ‘한국 선진국 경제론’(오히라상 수상) ‘한국 통화 금융위기의 충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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