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이 보는 '北상선 영해침범'

북의 의도..군함 NLL 통과도 시도할 것
북한은 왜 상선들을 잇따라 보내 우리 영해를 침범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경제적 실리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정치·군사적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에서 나온 행위라고 분석했다.

국방대학교 허남성 교수부장은 “제주해협에 이은 북방한계선(NLL) 침범은 ‘점진 전술(piecemeal tactic)’의 일환”이라며 “항로단축이란 경제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일단 제주해협을 통과해봤는데, 우리의 대응이 약하니까 NLL통과까지 시도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북측은 ‘NLL 무력화’(무력화)를 기정사실처럼 굳히면서 군함 통과도 ‘시험’할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만원 사회발전시스템연구소 소장과 북한전문가 이항구씨는 “상선 침범은 우리 영해를 좁히는 효과를 발생시킨다”며 “군함이 다녀도 어쩔 수 없는 지경까지 끌고가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6·15 공동선언’ 1주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도발’한 것에 대해서는 현 정권의 유화책을 확신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 경색을 바라지 않을 것(권민웅·북한문제 전문가)으로 예측했고, DJ정권의 햇볕정책 아래서 얻을 것은 다 얻어내자는 속셈(한 북한 전문가)이라는 것이다.

고위층 탈북자들도 대체적으로 ‘항로개척’이라는 경제적 필요성(조명철·대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에 공감하면서도 눈엣가시 같던 NLL을 남한의 정권교체 전에 없애겠다는 복안이 깔려있다고 분석했다. 외교관 출신 탈북자들은 “과거부터 빙빙 돌아가는 항로때문에 부담이 커서 더 늦기 전에 한번 밀어붙여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함께 망명했던 김덕홍씨는 “남한 정부가 미 공화당의 강경정책과 6·15 공동선언 중 어느 것을 더 따르는지 시험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영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김구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등은 “미·북 대화를 앞두고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요구하기 위한 카드”라고 분석했다.
/ 윤정호기자 jhyoon@chosun.com

대응책은..남북 관례·상호주의 원칙 지켜야
북한 상선 4척의 제주해협 무단침입과 동서해의 북방한계선(NLL) 위반과 관련, 국내 북한 전문가들은 앞으로 재발방지 등을 위한 대책으로 정치와 안보의 분리 남북한간 관례와 원칙 준수 상호주의 등을 주문했다.

전문가들은 제주해협을 침입한 북한 선박이 상선이긴 하지만 ‘영해 침범’이란 점에서 군사적 사안이므로, 남북관계를 고려한 정치적 해결은 옳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안기부 출신의 한 전문가는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니까 북한이 이를 역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이번 경우를 ‘용인’하는 등 약하게 나가니까 NLL 마저 무시했다는 것이다(외교관 출신 탈북자).

북한 선박이 영해에 들어오면 일단 경고를 하고, 이를 듣지 않으면 비행기를 동원하거나 위협사격을 가하는 등 강제로 정지시키거나 나포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지만원· 군사전문가, 송대성·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의 상선들은 사실상 당국의 지시를 받고 있어, 엄밀하게 따지면 ‘민간 선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북한 선박들은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 “김정일 장군이 개척한 통로”라고 주장했었다. 또 북한이 앞으로 군함 통과도 시도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있다(한국국방연구원 관계자).

때문에 정부가 이번에 단호한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다는 것이다. 고위층 출신의 한 탈북자는 “이번 사건이 일단락된 것이 아니다”면서 “북한선박이 또 다시 사전 통보없이 영해로 들어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우리 정부가 ‘군사적 대응’을 아예 검토 조차 않으니까 북한이 더욱 얕잡아 본다는 것이다.

또 남북관계가 특수관계라는 점에서 제주해협의 ‘무해통항권’을 북측에 일방적으로 허용해선 안되며, 차제에 우리 선박들도 운항거리 단축을 위해 북한 영해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허남성·국방대학원 교수부장, 박춘호·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이번 기회에 북측에게 남북 군사당국간 핫라인 설치를 요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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