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영해를 사전허가 없이 넘나들었던 북한 상선들이 5일 잇따라 영해를 우회하거나 침범하지 않는등 움직임이 크게 달라졌다.

남해안 제주해협을 4번째로 통과하기는 했지만 북한 상선 대홍단호(6390t급)는 사전인지를 못한 이유를 들어 유감의 뜻과 통과 불가피성을 호소한 데 이어, 5번째로 제주해협으로 향하던 청천강호(1만3000t급)는 아예 항로를 틀어 제주해협을 우회, 항해하고 있다.

북한 상선의 이런 자세는 지난 2-4일 우리측 영해인 제주해협과 우리 군사작전 구역인 북방한계선(NLL) 통과를 고수한 북한 상선 3척의 `경직된' 자세와는 크게 달라진 것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황의돈(黃義敦.육군준장) 국방부 대변인은 이와 관련, '지난 3일 국가안전보장회의 후 발표한 대북 강경성명과 4일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사전통보나 허가요청이 없는 상태에서 유사사태 재발시 강력히 대처하겠다'고 경고한 발언들이 북한의 태도변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 상선들의 변화는 이미 4번째인 대홍단호에서부터 포착됐다. 고열탄(석탄의 일종)을 싣고 중국 평산을 출발, 청진항으로 향하던 이 선박은 제주해협에 들어서면서 `영해통과를 허용할 수 없다'는 해군과 해경의 저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대홍단호는 무선교신에서 우리 해경이 `추후 협의해서 항로를 수립해야 한다'며 진입을 거부하자 '국제적으로 공인된 국제해협을 통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다음부터는 절차를 밟아달라'는 해경측의 거듭된 무선교신에 '여태껏 안 그랬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는게 좋겠다. 절차를 확인해 서로 절차를 세우자'고 말해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기를 바랐다는 전언이다.

또 일본 홋카이도를 출발, 남포로 향하던 청천강호가 제주해협으로 향하다가 이날 오전 12시께 상부의 지시를 받은 탓인지 갑자기 항로를 바꿔 제주해협을 우회했고, 독도 인근 해상에서 접근하던 국사봉1호(212t급)도 오후 1시 20분께 동해 공해상으로 각각 항로를 변경했다.

이와 관련, 군 전문가들은 북한측이 이미 `무해통항 지역'인 제주해협과 우리 군사작전지역인 NLL을 통과, `선례'를 남기는 당초 목적을 달성한 만큼, 더 이상 남한 정부와 싸울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한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련의 이번 사태에서 북한측은 해상수송의 비용 절감 및 시간 단축을 위해 중국 등 제3국 민간선박들이 늘 이용하는 해로를 자신들도 이용할 기회를 확보하는 한편, 부시 미 행정부 출범이후 긴장감이 감도는 한반도 상황에서 남한 당국의 진의를 떠보는 `양수겸장'의 시도를 한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의 태도는 초기대응 과정에서 정확한 정보와 확고한 전략을 토대로 치밀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정치논리'에 휘둘린 점이나, 사태진행 과정에서 서로 난조를 보인 것은 국민들의 지적을 받기에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거센 비난여론속에서도, 제주해협에 진입한 대홍단호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한 점이나, 6.15 남북공동선언의 정신을 존중하고 정경분리 원칙에 따라 남북 공동의 실리를 인내심을 갖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정부와 군 당국의 자세는 그 측면에서는 평가할 만한 것도 사실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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