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상선 3척의 제주해협 무단 침입과 관련한 우리 정부의 대응에 대해 지나치게 유화적이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제주해협이 북한에겐 예외이나 ‘무해통항권’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과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감안, 경고와 함께 앞으로는 ‘사전통보’할 것을 요구하는 선에서 매듭을 지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북한이 일을 저지르면 일단 봐주고, 다음부터 잘하라는 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방식이 오히려 북한에게 그릇된 상황 인식을 키워주는 셈이라는 지적이 강하다. 북한 상선들이 제주해협 침입에 이어 곧바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한 것도 우리 측의 첫 대응이 단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 정부는 1998년 북한 무장 잠수정의 동해안 침입 때에도 ‘사죄’를 받아내지 못하고, 북한군의 시신만 인도해 적지않은 비판을 받았었다.

또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 해결할 문제를 우리 정부가 일방적으로 ‘허용’하는 것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남북대화 전문가인 이동복 전 의원은 “북한이 NLL을 무력화시키고 무해통항권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를 협상으로 해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들어와 기정사실화 하겠다는 것을 정부가 도장을 찍어준 셈”이라고 비판했다. 제성호 중앙대 교수도 “적대국 간의 해양 이용이나 경계선 관할 문제는 협상으로 해결해야 하며, 그 전에라도 우리 선박도 북한 지역의 무해통항권을 확보하는 상호주의에 입각해 대응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제 교수는 또 북한상선들의 귀로가 작년 3월 북한 해군사령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5도 통항질서’에서 제시한 ‘해상경계선’과 일치한다는 점을 지적, “이번 기회에 자신들의 영해 주장을 재강조하면서 영토관할권을 넓히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말했다. 제 교수는 이어 NLL을 선포한 주체가 유엔사령부이기 때문에 향후 미·북협상에서 NLL문제를 새로운 협상카드로 내놓을 것으로 예측했다.

강성윤 동국대 교수, 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은 한국이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강경책에 휘둘리고 있다고 본다”며 “북측의 행위에 대해 남측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 향후 대남정책을 검토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 군사 전문가는 “북한 상선이 ‘상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등 이번 사건이 의도적인 침범임을 밝혔으면, 일단 제지하고 북측의 공식 입장을 들은 후 처리한다든가, 대화를 요구하는 식으로 대응했어야 했다”면서 “정부가 ‘6·15 공동선언’에 너무 매달려 북한에 대해 제대로 된 주장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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