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분위기는 침울했다. 한국 전쟁 이후 최초로 북한 민간선박들이 제집 드나들 듯 우리나라 해안을 헤집고 다니는데도 이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 군의 속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특히 지난 주말 북한 선박의 제주도 영해침범으로 비상이 걸려 이틀밤을 꼬박 국방부 지하벙커에서 새야했던 해군 야전부대 군인들의 말은 매우 직설적이다.

『앞으로 북한 선박을 일일이 호위하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군인들은 북한선박들이 우리 해군의 지시를 무시하고 「마이 웨이(My Way)」한 데 대해 당혹감을 넘어 허탈해 했다. 지난 2일 제주해협에선 우리 해군의 경고에 대해 북한선박들은 『김정일 장군님이 개척하신 통로』라며 묵살한 데 이어 4일에는 일부러 서해 백령도 해상으로 들어와, 감시하던 우리 해군함정을 비웃 듯 북방한계선(NLL)을 통과해 해주쪽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곳은 과거 남북한 해군 간 첨예한 대결장이자, 불과 2년 전 무력충돌까지 이어졌던 「서해 해전」의 현장 아닌가.

4일 오전 국방부 브리핑룸에선 북한 상선의 NLL통과를 허용한 데 대해 국방부 및 합참관계자들의 궁색한 답변이 계속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통과 허용은 6·15 공동선언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3일 열린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이미 허용한 결정이 아니냐는 답변도 나왔다.

북한배가 마음대로 한국 영해를 다닐 수 있다면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우리 배도 청진이고 원산근해고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단 말인가. 국방부의 한 장성은 『NSC 결정에 대해 할 말이 없다. 면목이 없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안보를 담당한 군 최고 간부인 장군까지 고개 숙이는 세상이다.
/유용원·사회부기자 kysu@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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