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장군이 개척한 항로"


북한 상선 3척이 제주도 해협을 무단 통과한 2일 낮부터 군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김동신(金東信) 국방장관은 이날 밤 급히 청사에 들어와 상황을 보고 받았으며 조영길(曺永吉) 합참의장도 일요일인 3일 아침부터 집무실과 합참 지하벙커에서 상황을 챙겼다. 청와대 등 외교안보 부서들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부는 53년 정전협정 이후 그동안 북한 상선이 단 한 번도 제주도 영해를 침범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왜 이틀간 연속 침범이 이뤄졌는가.

군 당국은 북한 상선들의 이번 행동을 의도적으로 보고 있다. 박정화(朴貞和) 합참 해상작전과장은 3일 브리핑에서 『북한 령군봉호는 우리 함정과의 교신에서 「상부에서 내린 지시대로 제주해협을 통과하겠다」고 통고했다』고 밝혔다.

또다른 북한 선박은 무선교신을 통해『김정일 장군님이 개척하신 통로』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자는 북한이 제주인근 항해를 단축시킬 수 있는, 이른바 「새로운 항로 개척」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 인정」 등의 의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 3일 국방부에서 박정화 합동참모본부 해상작전과장이 북한 상선 3척의 영해침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군 당국자들은 북한이 제주해협에 대해 「평시에 외국 선박이 연안국의 평화, 안보 등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 자유롭게 통항(通航)할 수 있는 권리」인 「무해통항권」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제주해협은 현재 북한을 제외한 외국 민간선박들에 대해선 무해통항권이 인정돼 자유로운 통행이 허용되고 있으나, 북한 선박에 대해선 군 당국이 작전예규에 따라 이 해협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규제해왔다.

김현수(金現洙) 해군대학 국제법과 교수는 『무해통항권은 평시 때 권리로 현재 정전상태에 있는 남북한 간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도 『유엔 해양법 협약에는 타국 영해에서도 무해통항권을 갖도록 돼 있으나 안보상 위협이 된다면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군 당국은 남북 관계를 고려, 북한 선박에 대해 경고방송 및 감시만을 하는 「미온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한 상선들의 영해 침범이 계속될 경우다. 북한으로선 종전에 제주도 남쪽 공해상으로 우회하던 것보다 300~400마일이 짧아 시간 및 경비절감에 큰 도움이 될 제주해협 항로에 탐을 낼 것이라는 예상이다. 정부 관계자는 『만약 북한이 단축항로를 원했다면 침범하기 전에 우리와 먼저 논의를 했어야 되는 것이 순서』라고 말했다. 3일 오후 긴급하게 열린 국가안보회의는 저녁까지 이어졌다.
/庾龍源기자 kysu@chosun.com
/李河遠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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