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작년 한해 동안 최소한 1000만달러 이상의 석유를 중국 일본 태국 등지에 수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3일 발표한 「2000년 북한대외무역동향」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일본에 중유를, 중국ㆍ태국ㆍ프랑스에는 가공유와 정제유를 수출했다.



◇ 북한 원유탐사대원들이 '육탄' '자폭'이란 표어가 붙은 시추선에서 원유를 시추하는 모습.


북한이 일본에 수출한 중유는 대일 수출품목 중 수산물, 의류, 전자제품, 철강에 이어 5위를 차지했으나 정확한 액수는 파악되지 않았다. 중국에 수출한 가공유는 대중국 수출품목 중 원목, 철강, 게 등에 이어 다섯 번째로 약 340만달러 규모였으며, 태국에는 749만달러어치의 정제유를 팔았다. 프랑스에 판 정제유 규모는 3만 달러 어치에 불과했다.


KOTRA는 북한이 중국과 태국에 수출한 정제유는 수입 원유를 임가공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일본에 수출한 중유에 대해선 그 같은 추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KOTRA의 이 같은 추정은 북한의 원유생산 사실(본지 5월 26일자 보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 분석한 것으로, KOTRA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원유 생산이 사실일 경우 이 추정은 근본적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대상국 2000년 실적
중국 340만달러어치의 광산 수출품 중 정제유가 대부분을 차지. 대중 수출 품목 중 5위.
일본 중유를 수출. 수산물·의류·전자제품·송이버섯·철강에 이어 대일 수출품 중 5위.
태국 749만달러어치의 정제유 수출. 1952만달러의 대태국 수출액의 약 3분의 1규모


북한의 석유 수출이 자체 원유 생산에 따른 것임은 여러 가지 정황으로 뒷받침된다. 우선 북한은 금강산 관광사업 대가(지난해 말까지 3억4200만달러) 등 외화 수입 증가로 지난해 전체 수입은 대폭 늘리면서도 정작 시급한 원유 도입은 99년의 31만7000t에서 소폭 증가한 38만9000t에 그쳤다. 북한이 한 해 필요한 원유는 최소한 150만t이며, 숙천에서 원유가 생산되기 이전인 98년에는 60만9000t을 수입했다.


북한이 최소 필요량의 4분의 1도 안 되는 원유를 수입해 놓고 이 중 상당량을 임가공으로 수출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은 95년의 경우 110만t의 원유를 도입해 180만달러어치의 광물성 생산품(대부분이 정제유)을 중국에 수출했다. 그러나 작년 경우 불과 약 39만t의 원유를 수입하고도 중국에만 340만달러어치의 정제유를 수출했다. 수입량이 약 5분의 1로 줄었는데도 수출은 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북한이 지난해 처음 태국에 수출한 정제유는 749만 달러를 기록했다. 대 태국 수출 품목 중 1위를 차지했다. 문제는 이 정제유 내역을 보면 역청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역청유는 유전(油田)에서 막 뽑아 올려 모래와 타르가 뒤섞인 점액질이 강한 기름으로 북한의 원유 생산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일본에 중유를 수출한 사실은 이번에 처음 파악됐다. 이 중유도 평남 숙천 유전에서 생산된 것일 개연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 중유가 북한이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에서 제공하는 연간 50만t의 일부일 가능성도 예상해 볼 수 있으나 중유 비용을 부담하는 미국이 묵인할 리 없다는 점에서 생각하기 어렵다.

한 전문가는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북한이 연간 1000만달러 이상의 석유를 수출하고 있는 사실은 자체 원유 생산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설명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최근 북한 유전개발 문제를 다뤄 온 정부 내 전문가들에게 북한 석유 문제는 예민한 사안인 만큼 이 문제와 관련한 인터뷰·기고·자료 제공 등 일체의 언론접촉을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려 놓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 북한 당국도 97년 도쿄에서 열린 북한 유전 설명회의 주관을 위임하는 등 유전개발 관련 투자 유치 임무를 맡겨 온 호주교포 최동룡 박사에게도 함구령를 내렸다. 최 박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 전까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이교관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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