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간 지칭할 때는 남한·북한 대신, 남측·북측 또는 남쪽·북쪽으로 표현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름이나 직책 뒤에 ‘선생’을 붙여 호칭하는 것이 무난합니다.”(통일부 방북 교육 중) 북한 여행은 신기한 구경이고 묘한 체험이다.

말은 100% 통하는데 어떤 외국보다 낯설고, 때론 ‘아 이래서 우린 한 민족이구나’ 싶어 뭉클하다. 한국관광공사가 구성한 ‘평양·묘향산 시찰단’과 함께 북한에 다녀왔다.

평양 시가지. 건물 마다 붉은 구호가 아우성인데 차가 드문 거리는 조용하다. ‘결사 옹위’ ‘~받들어 모시자’ ‘~관철하자’ 식의 구호를 이고 있는 회색 건물은 우울하지만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가 줄지어 선 거리는 아름답고, 고즈넉한 보통강변은 유럽 어딘가를 떠올리게 한다.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지고, 대형 테이블 같은 무거운 물건을 (차 대신)사람들이 직접 옮기는 모습이 옛날 영화 속 한 장면 같다.

만경대-개선문-주체사상탑 등 북쪽이 짠 일정대로 평양을 돌아보는 남측 여행단은 예의 바르다. 관광지마다 배치된 여성 안내원들이 절절한 눈빛, 북받치는 감정을 섞어가며 “위대하신~”으로 시작하는 설명을 적당이 흘려 듣는다. 안내원이 동석하고 접대원 동무들이 음식을 나르는 식사 자리에서 “아리랑 공연은 좀…” 하던 여행객은 오히려 살짝 눈총을 받는다.

기념품 쇼핑. 남과 북이 서로 가장 활기를 띨 때다. 평양행 비행기에서부터 ‘들쭉술이 좋다더라’ ‘먼저 평양 갔던 남편이 60만원짜리 인민예술가 그림 사왔다’던 일행과 북측 판매원 사이에는 이념의 차이도, 긴장도 없다. 즐겁고 신나는 흥정이 있을 뿐이다.

평양 방문에서 사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둠, 그리고 침묵이었다. 이른 아침, 양각도 호텔 창문을 열자 충격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짙은 안개에 깊숙이 잠긴 회색 도시는 지금까지 봤던 어떤 곳과도 다르다. 자동차 소음 없고 네온 사인 없는 절대 침묵 속에서 서서히 동이 터온다.

대동강은 또 얼마나 조용히 흐르는지 강변에 죽 늘어선 나무 그림자를 그대로 비춰낸다. 해가 지면 조명이 거의 없는 거리, 그 캄캄한 어둠 속을 사람들이 조용히 오간다.

연면적 10만평 규모에 방 600여개, 3000만권의 장서가 있다는 ‘인민대학습당’. 열람실에는 ‘김일성주의’를 공부하는 학생도 있지만 열심히 영어 교재를 들여다 보는 학생도 보인다.

낡은 오디오로 ‘손풍금 모음곡’을 듣는 학생도 있지만 컴퓨터로 채팅을 하는 학생도 보인다. 전자우편(이메일) 주소는 물론 영어. 한 안내원에게 “이메일 주소가 뭐냐”고 묻자 “어차피 국내용”이라며 알려주지 않는다.

평양 어린이 5000여명이 방과 후 특별활동을 한다는 ‘학생소년궁전’. 방마다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바둑 두는 꼬마들, 자수 놓는 소녀들, 가야금 뜯고 노래 부르고 춤 추는 아이들. 너무 예쁘고 너무 잘하는 모습에, 무표정과 과장된 감정표현 사이를 시시각각 오가는 모습에 눈을 뗄 수 없다. 남측 일행이 “한국 가면 애들을 강하게 키워야겠다”라고 농담을 나눈다.


평양서 북쪽으로 150㎞ 떨어져 있는 묘향산(1909m). 개성 등에 이어 북한이 조금씩 개방하고 있는 관광지다. ‘금강산의 수려함과 지리산의 웅장함을 두루 갖췄다’는 묘향산 초입. 맑고 잔잔한 묘향천이 오색 단풍빛을 고스란히 담고 흘러 더욱 장관이다. ‘폭포가 1만개’라는 만폭동에서 1.6㎞ 쯤 떨어진 비선폭포를 향해 올라갔다.

묘향산 안내를 맡은 ‘강사 선생’ 허봉순(24)씨가 메가폰에 입을 대고 낭랑한 목소리로 시도 읊고 노래까지 부른다. 서곡 폭포·무릉 폭포·은선 폭포·은정 폭포…. ‘물이 말라 좀 아쉽다’ 싶었는데 비선폭포에는 채 이르지도 못하고 “시간 됐으니 도로 내려가라”는 안내원의 말에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향산호텔서 산채 곱돌탕, 두부탕, 칠색 송어 튀김, 도라지 무침에 이르기까지 배불리 먹고 돌아오는 길. 땔감용 나무를 모조리 베어낸 듯 헐벗은 야산이 이어지는 황량한 고속도로변 풍경에 지친 여행객들이 평양 시내로 들어서자 ‘역시 평양’이라고 속삭인다.

평양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돌 때는 갑자기 정전이 되기도 했고 계단에는 아예 불이 들어오지 않아 안내원이 손전등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묘향산 향산호텔 사우나에는 온탕이 없었다.

평양 시내에서는 미국 기자 일행과 스치고 지나갔다. “아리랑 관람을 포함, 관광하고 가라”며 북한 당국이 초대했다 했다.


한 미국 기자는 “평양의 외교가에서 조차 하루 1시간 급수에, 전기 공급이 끊겨 16~17층짜리 아파트를 걸어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평양 시민들의 표정은 밝아 보이고 나름대로 ‘스타일’을 추구하는 여유도 엿보인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김책공대 앞 대학거리에는 검은 가죽 트렌치코트를 입은 여성들도 보였고 반짝이 달린 머리핀, 곱창 밴드로 머리를 묶은 소녀도 많았다.

평양 단고기(개고기) 식사를 마지막으로 3박4일의 일정을 끝내고 공항으로 달리는 버스 안. 한 여행객이 아리랑 공연에서도, 교예단 공연에서도, 학생소년궁전 공연에서도 울려 퍼진 애절한 멜로디의 ‘내 조국의 밝은 달’이란 북쪽 노래가 좋다’면서 덧붙인다. “가사만 빼고….”



"수령님 선물 다 보려면 바년 반 걸립네다

북측이 묘향산 등반에 앞서 꼭 보여주고 싶어하는 곳은 ‘국제친선전람관’이다.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을 전시하는 곳이다. ‘선물종합안내도’에는 ‘주체93년(2004년) 12월 말 현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받은 선물이 ‘53419점’이라고 돼 있다.

안내원이 “위대하신 수령님께 올린 선물을 전시하는 방은 150개나 된다”라며 “1점에 1분씩 감상해도 다 보는데 1년 반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밀랍으로 만든 김일성 주석상이 있는 방에는 한 줄로 서서 들어가게 했다.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귀고 은은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서 있는 밀랍상이 금방이라도 움직일 듯 하다. “야 왜 우리가 다 숙연해지냐”고 여행객들이 수근거릴 정도로 기묘한 분위기다. 과거 북측은 이곳에서 참관단에게 참배를 권하기도 했다 한다. 전시관에는 스탈린이 보냈다는 1950년대 승용차, 방탄 열차를 비롯해 각종 공예품이 가득하다.

몽블랑 만년필 옆에는 잉크병까지 놓여있고 화장품 세트도 매니큐어 병 하나 빼놓지 않고 전시해 놓았다. 이제는 한 물 가버린 컴퓨터 모니터와 프린터도 유리 전시관 안에 들어있다.

“선물을 보면 세계 지역별, 민족별 특성이 다 나타나 있기 때문에 세계 여행을 따로 갈 필요가 없다” “노르웨이에서 바친 박제 악어는 사람 잡아 먹는 맹수가 위대하신 수령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다는 철학적 해석을 담고 있다”라는 안내원의 진지한 설명에는 “남과 북의 사이는 아직 멀구나” 싶기도 하다. /평양·묘향산=글·사진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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