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을 방문한 남측 일행이 만경봉 근처 기념품 판매대에서 북한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넘겨 보고 있다. 가운데 여성이 북한 판매원. 평양=정재연기자

인기작가 김기만씨등 작품은 없어서 못팔아
왕벌젓꿀·상황버섯도 한국인에게 최고인기


북한 여행은 쇼핑 여행? 북한을 찾는 남한 방문객이 늘면서 현지 참관 분위기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구성한 관광시찰단 133명이 평양과 묘향산을 방문한 지난 22~25일 3박4일의 풍경은 남북한이 이념의 차이를 ‘자본’으로 극복하는 모습이었다.

22일 오후 평양에 위치한 김일성 주석 생가 만경대. 근처에 기념품 코너가 차려졌다. 그림이 수십장 쌓여 있었고, 수공예품도 등장했다. “여기가 호텔보다 훨씬 저렴하다”며 판매원들이 호객에 나섰다. “이 화가 약력을 몰라 못 사겠다”며 가격을 깎으려는 손님에게 판매원이 “나도 선생님 약력을 모르잖습니까”라고 웃으며 응수했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 유로만 통용되지만 달러도 받았다. 그림을 두고 ‘40유로’라는 판매원과 ‘30유로’라는 손님이 옥신각신 끝에 결국 ‘40달러’로 합의를 봤다.

24일 오전 평양 만수대 창작사. 공훈예술가와 인민예술가의 창작 공간이라는 설명은 불과 몇 분 만에 끝나고 쇼핑이 시작됐다. 가장 비싸다는 인민 예술가들의 그림은 300~700유로 정도. “선생님, 그렇게 깎으시면 어떻게 합니까”라며 볼멘소리를 하던 판매원들이 부지런히 계산기를 두드려 댔다.

“100유로짜리 자수를 70유로에 샀다”는 한 남쪽 여성은 “인건비를 생각해 봐, 싸다, 싸”라고 감탄했다. 한국에서 특히 인기인 정창모, 김기만 화백의 그림은 없었다. 북측 판매원이 “없다”고 하자, 한 남쪽 인사는 “한국 사람들이 싹쓸이 했으니까 없지”라고 말했다.

북한을 자주 방문한 한 대학교수는 “김기만 그림은 관광지나 호텔에도 깔려 있는데, 그건 다 가짜”라며 “남쪽의 수요 덕분에 인기 작가의 그림은 해마다 100%씩은 가격이 오르는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북측 안내원이 따로 가져와 보여준 정창모 화백 그림은 몇 년 전만 해도 200~300달러였는데, 이번에는 650유로를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한국 관광객의 ‘식성’은 그림만으로 충족되지는 못하는 듯했다.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기념품 매장의 왕벌젖꿀, 상황버섯, 안궁우황환, 민예품 전시관에서 ‘성기능 장애에 좋다’고 광고하는 약초까지 상품은 즐비하고, 서로 사려고 몰려든 인파가 매장마다 북적였다.

그 소란스러운 풍경을 지켜보며 “파는 쪽이나 사는 쪽이나 쇼핑 모양새가 동남아에서보다 심하다”고 투덜거리던 인사들의 표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 돈이 동포가 살고 있는 ‘북한’에 뿌려지는 것이기 때문인 듯했다. /정재연기자 whaude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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