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상

지난 25일 미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은 부시 대통령이 획기적으로 개편된 새 군사전략, 국방개혁안을 밝힌다고 해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확정된 최종안을 내놓지 못했다.

럼즈펠드의 의회 증언도 마찬가지였다. 올해 79세인 앤드루 마셜의 감독하에 비밀리에 입안된 이 개혁안이 미 의회 및 군부의 견해와 너무 달라, 추가 조정이 불가피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인력 감축과 인사제도 개편 등에 관한 반발은 결코 만만치가 않은 모양이다. 추가 조정은 오는 9월쯤이나 끝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번 과정에서 단면이 드러난 부시 정부의 새 전략 개념에는 우리가 주목해야 할 변화들이 적지 않다. 우선 중국을 미국 일극체제에 의해 주도되는 ‘신 세계질서’에 도전할 수 있는 대표적 세력으로 보고, 안보정책의 중심 축을 유럽에서 아시아 태평양으로 전환한다는 개념이다.

이를 위해 일본과의 동맹관계를 미·영관계 수준으로 대폭 강화하고, 기동성 있는 군사력을 괌(Guam)과 호주 등지로 전환, 집중배치해서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대만은 반드시 확보해야 할 전략적 요충지로 떠올랐다. 부시나 아미티지의 발언, 그리고 최근 미국 정부의 정책을 보면 이 같은 큰 개념은 사실상 이미 ‘수행중’임을 느낄 수 있다.

미 정부의 이 같은 방향 설정은 너무 성급하고 일방적인 감이 있다. 이 지역에 때 이른 긴장을 조성하고 중국의 국민적 경계심만 자극할 우려가 있다.

일본과의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하려 드는 것도 우리로서는 조심스럽다. 미국이 일본의 중요성에 의지할 경우, 한반도의 무게가 그만큼 가벼워졌던 경험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의 우익화 경향에 대한 주변 각국의 거부감까지 고려하면, 미국으로서도 만만치 않은 부담일 수 있다.

군사력을 괌과 호주 등에 집중 배치한다는 데 대해서도 별로 공감을 얻지 못 하고 있다. 군부 내에서도 많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괌과 호주는 기지로서는 너무 멀다. 만약 이 시점에 동북아시아의 군사력을 이곳으로 전환한다면, 미국의 방위 의지와 방위선의 후퇴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

나아가 중국의 자유로운 군사 활동공간만 넓혀 줄 뿐이다. 무엇이 이점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MD를 두고도 ‘정신나간 사람들’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현재로서는 주한미군이 당장 의미있는 전환배치의 대상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아직도 ‘검토중’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미간의 중요한 견해 차이를 얼버무리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실제 아직 확정짓지 못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는 결국 한반도가 그만큼 우선적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일 수 있다. 미국 안보정책에 있어 한반도 문제는 독립변수가 아니라 하나의 종속변수일 뿐이라는 방증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군사력 전환’이라는 개념은 1950년 1월 “알류산~재팬~오키나와를 잇는 선(AJO Line)을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으로 삼겠다”고 해서 6·25 남침 의욕을 자극했던 이른바 ‘애치슨 선언’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우려를 떨칠 수 없다.

미국이 참으로 ‘신 세계질서’가 롱런하기를 기대한다면 세계가 여기에 공감하고 불편해 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미국은 용렬한 패도(패도)를 버리고, 좀 더 큰 여유와 포용력 그리고 대국다운 금도를 보여야 한다. 또 총체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상병벌모(상병벌모)의 전략적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철저한 현실 인식과 냉철한 지혜로 대처해야 한다.

미국의 군사전략이 최종 정리될 때까지 한국 정부가 무엇을 어떻게 서둘러 대비해야 할지는 자명하다. 변화하는 국제 안보환경을 폭넓게 관조하면서, 과거 ‘페리 프로세스’ 작성 때 이상으로 우리의 생존적 안보이익이 희생되지 않도록 다양하고 총체적인 국가적 노력을 다해야 할 때이다.
/미국 랜드(RAND)연구소 선임객원연구원·전 국방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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