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좁아져..현 회장 강경태도는 반발 불러올수도

현대그룹의 대북관광사업이 난기류에 휘말려 있는 가운데 모든 사태의 발단이 된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은 두문분출이다.

11일 현대그룹 등에 따르면 김 전 부회장은 지난달 20일 미국에서 입국했다 사흘만인 23일 일본으로 출국,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5일 현대아산 이사회에서 부회장직마저 박탈당하며 그룹에서 퇴출당했지만 아직까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논란이 됐던 남북협력기금 유용 의혹에 대해 최근 통일부가 사실 무근이라고 밝히면서 그가 입을 열 여지가 생겼음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북측을 상대로 결백을 주장하며 로비를 하고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어떤 정황도 포착된 것이 없다.

현대 관계자는 “사태 초기에는 설령 북측을 상대로 결백함을 주장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은 지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달 초만해도 그가 중순께 귀국해 남북협력기금 유용 등에 대해 해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최근 그에 대한 압박수위가 높아지면서 해외에서 장기체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10일 국정감사에서 김윤규씨 문제를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혀 사법처리 가능성을 시사했고 그가 조성한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관계자는 “36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정부에서 사법처리 가능성까지 언급하면서 만감이 교차할 것”이라며 “지금은 그가 입을 열만한 분위기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 같다”면서 그의 해외체류가 길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북측도 ‘김윤규 살리기’를 포기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최근 평양을 다녀온 한 대북사업 관계자는 “북측 관계자들이 ‘김윤규 전 부회장이 어쩌다가 그렇게 됐느냐’고 아쉬워하긴 했지만 그를 복귀시켜야 한다는 등의 강경 입장은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북측이 현대그룹의 김 전 부회장 퇴출 결정에 완전히 수긍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대한 복귀 요구를 접는다면 김 전 부회장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한편에서는 강경일변도인 현정은 회장의 태도가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 수도 관측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김 전 부회장을 ‘비리 경영인’이라고 지칭했던 현 회장은 10일 현대아산 임직원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그를 ‘종기’에 비유했다.

현대의 한 관계자는 “이미 퇴출당한 사람인데 그를 인격적인 모독에 가까운 ‘종기’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하다”며 “오히려 반감만 부추겨 일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을 것같다”고 우려했다.

대북사업의 치부를 폭로하거나 비자금의 용처를 공개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전망이다.

대북사업의 성공을 바란다면 그가 용단을 내려주기를 바란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북관련 시민단체인 남북포럼의 김규철 대표는 “그가 최대한 빨리 귀국해서 회사의 방침에 승복한다고 밝히는 것이 꼬일대로 꼬인 남북경협사업의 실마리를 푸는 길”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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