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동 총리서리는 지난 총선 때 민주당을 마치 영원히 상종 못할 원수 대하듯 매도했다. 그러더니 총리로 지명된 직후에는 “선거전략상 극단적인 얘기를 했던 것”이라며 말을 돌렸다.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대의(대의)를 위해’ 입각한다는 말도 했다.

한나라당 시절인 98년 7월에는 이런 말도 했다. “현 정부는 우파는 정치사정(사정)으로 다스리고 좌파와는 화해를 기도하고 있다. ” “사상범에 대한 전향제 폐지로 간첩 등 반체제 인사들의 활동폭을 넓혀주고 있다. ” “북한과 정전상태에 있는 상황에서 현 정부의 이와 같은 발상(햇볕정책)과 자세는 국가의 정통성과 국민의 생존기반을 송두리째 붕괴시킬 위험성이 있다. ” 이한동 총리서리는 ‘DJ 비자금’이 대선자금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같은 해 1월 한나라당 당직자회의에서 그는 DJ진영을 ‘탱크를 몰고온 점령군’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해 3월 김 대통령 측이 본격적인 정계개편을 시도하자 이한동씨는 이렇게 말했다. “북풍문제의 왜곡 호도 및 여론조작으로 한나라당 때려잡기를 시도하다 실패한 집권여당은 이제 앞뒤 안가리고 야당파괴에 나섰다. ”

그런데 그가 그렇게 윽박지른 DJ진영과의 공조복원을 이제는 ‘숙명적인 것’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리고 김 대통령에 대해 “신명을 다해 충성하겠다”고 맹세했다. 이한동씨는 84년 6월, 민정당 사무총장으로 발탁되면서 이렇게 말했다. “총재(전두환)의 통치이념과 창당이념 구현에 신명을 다 바치겠다. ” 그래서 그랬던지 그 당시 신문을 뒤져보면 이한동씨는 ‘민정당 강경파’로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던 이한동씨가 89년 8월에 와서는 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난날의 잘못된 유산에 대해서는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의 뜻이자 내 뜻이다. ” 그렇다면 그 정리돼야 할 5·6공 구조에서 그가 맡았던 역할은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 것인지 심히 궁금하다.

그 후 이한동씨는 김영삼 정권의 여당 중진으로 바뀌어 “YS의 개혁은 전광석화와도 같다”며 또 다른 말,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번 선거 때는 자민련 총재직으로 옮겨 ‘원조(원조)보수’라고 자리매김되었다. ‘그런 원조보수가 민주당 정권의 총리로 가는 것은…?’ 하고 기자가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개혁적 신(신)보수를 채택했음을 알아달라. ”

정치의 세계에서는 물론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한다. 정치인들은 또 정치학자나 정치사상가도 아니기 때문에 ‘원조보수’니 ‘개혁적 신보수’니 하는 ‘만든 말들’을 그때 그때 적당히 써먹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의 이한동씨의 말들은 그 앞과 뒤, 몇 년 전과 몇 년 후가 너무나 맞지 않아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혹시 이것이 이한동씨가 즐겨 쓰는 ‘춘하추동을 겪은 경륜’이라는 것인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말이라는 것은 한번 내뱉으면 영구히 기록되는 것이다. 정치인은 자신이 토해낸 말들에 대해서만은 엄격히 책임져야 한다. 지난 시절에 한 말과 그 후의 처신 사이에는 일정한 일관성도 있어야 한다.

발전적인 시대적응은 있을 수 있지만 그 ‘적응’이 역대 모든 정권들에 빠짐없이 봉사한 것이면 그것도 만만찮은 시빗거리가 될 수 있다. /논설주간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