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답방이 좋은 조건하에 적절한 시기에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공개적으로, 그것도 직접 화법을 통해 답방 스케줄을 밝히라고 요청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뿐 아니라 외교적 관례에도 어긋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국가 원수가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해서 외신 기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약속 이행 촉구를 한 예를 들어본 적이 없으며, 그것도 두 차례에 걸쳐 「확고한 입장」「확실한 스케줄」을 밝히라고 언급한 것은 너무 매달린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런 문제는 공개적으로 제기할 일이 아니라 외교적 막후 접촉을 통해 촉구하고 설득해야 하며,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공개적으로 요구했다가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두번 망신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이 합의 사항을 지키지 않는 것은 한 두번이 아닐 뿐더러 그것을 정략적으로 이용해 왔던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다.

과거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았다면 따질 것은 따지고, 다질 것은 다져가며 행동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은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 않는가. 「6·15 합의서」상에 답방 시점이 명시되지도 않았는데도 「상반기중에 올 것」이라고 했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상반기 중에 올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가, 다시 「연내」로 수정하더니 그것이 다시「불확실」로 바뀌고, 결국은 대통령이 직접 답방을 촉구한 것은 우리 쪽이 그동안 이 문제에 너무 매달려 자가발전을 해왔음을 노출시킬 뿐이다.

김대통령으로서는 눈앞의 6·15선언 1주년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합의 사항인 「답방」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우리의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고, 또 미국과의 대화에는 「목을 매면서」도 남한과의 대화에는 오불관언인 북한의 잘못된 태도를 환기시킬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말로는 한반도 문제를 남북이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북한이 남북문제를 「종속변수」로 여기는 구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남북대화 실무 부서 책임자도 아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답방을 간청하는 것은 원칙에도 어긋나고 나라의 체통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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