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기관 내사, 재판 없이 즉결처분

북한이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성·검찰소 등 권력기관 간부들의 부정과 비리를 단속하는 정치호위국이라는 이름의 중앙당 직속 특별단속반을 신설,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99년 1월 북한을 떠나 지난 해 8월 입국한 인민군 고위간부 출신의 정철호(가명·46세)씨는 김일성 주석 사망(94.7) 후 북한에서 국가안전보위부 등 사찰기관을 낀 각종 부정과 비리가 만연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96년 경 당중앙위원회에 정치호위국을 신설, 이들로 하여금 "암행어사"식 사정작업을 벌이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북한이 국경지역과 대도시 국가안전보위부·인민보안성 등 권력기관 간부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 탈북자 증언 등을 통해 간간이 흘러나왔지만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씨에 따르면 당중앙위 정치호위국 인원은 대략 500명 정도로 책임자는 현역 인민군 소장이다. 이들은 모두 인민군 복장을 하고 있으며 비리혐의가 포착된 지역에 비밀리에 투입돼 암행감사를 펼친다.

정치호위국이 "암행어사"식 단속을 펼치면서 주목했던 것은 ▲입당·간부등용을 미끼로 한 뇌물수수 ▲외화벌이사업에 개입해 금품을 뜯는 행위 ▲불법행위나 이권사업의 뒤를 봐주고 이익금을 챙기는 행위 ▲상업유통망이나 배급망에 끼어들어 물품을 빼돌리는 행위 등 주로 직위나 직권을 악용한 권력형 비리.

정치호위국 요원들은 특정 지역의 비리혐의가 포착되면 현장에 나가 주민들을 일정한 장소에 모아놓고 권력기관이나 당, 행정·경제기관 등 간부들의 비리·부정과 관련한 민원사항을 빠짐없이 적어내게 하는 방식으로 기초 자료를 만든다. 이어 이 기초자료를 토대로 본격적인 내사를 벌이며,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기관이나 간부의 경우 사무실이나 가택을 수색해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부정·비위 사실이 확인되면 재판 없이 현지에서 즉결처분하는데 죄질이 나쁘거나 죄상이 무거운 경우 주민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공개 처형하기도 했다고 정씨는 밝혔다. 정씨는 정치호위국이 활동에 나서면서 각 지역에서 많은 간부들이 출당·철직(직위해제)·투옥되거나 처형됐다면서 특히 식량난이 정점에 이르렀던 98년에 간부들이 많이 죽었다고 말했다. 강원도 원산시당 비서가 비리에 연루돼 가족과 함께 정치범수용소로 추방됐으며, 평남 덕천시에 있는 승리자동차공장 초급당 비서가 자재를 빼돌려 중국에 밀매하다 적발돼 철직되기도 했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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