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력사』 고등중학교 제2학년용(1999)

제 11과

군사를 돌려세운 리성계의 죄악

리조봉건국가는 리성계가 고려왕조를 뒤집어엎고 정권을 잡게 됨으로써 세워지게 되였습니다.

리성계가 정권을 잡고 왕이 되려는 야심은 1388년 료동원정시기부터 로골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 중국에 세워졌던 명나라의 통치배들은 고려에 대하여 압력을 가하면서 강원도 철령이북의 고려땅을 무조건 떼달라는 강도적인 요구를 제기하여왔습니다.

한편 강계지방에는 《철령위》라는 저들의 통치기관을 내려고까지 서둘렀습니다.

고려정부는 이러한 명나라의 옳지 못한 입장과 행동에 대하여 격분해하면서 이 기회에 무력으로 료동지방을 들이쳐서 적들의 침략기도를 꺾어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료동지방의 옛 고구려와 발해 땅을 되찾을수 있는 마지막 좋은 기회였습니다.

고려정부에서 세운 이 료동원정계획은 당시 조건에서 잘 세운 계획이였으며 또 능히 실현할수 있는것이였습니다.

고려정부는 곧 5만명의 료동원정군을 편성하였으며 총사령관으로는 최영, 부사령관으로는 조민수, 리성계 등을 임명하였습니다.

원정군은 1388년 5월초 압록강하류에 있는 위화섬에 이르렀으며 일부 선봉부대는 압록강중류일대에서 강을 건너가 료동지방으로 진격하고있었습니다.

전반적정세는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리성계는 이 기회에 고려왕조를 뒤집어엎고 정권을 잡으려는 야욕에서 료동원정을 중도에서 반대하였습니다.

리성계는 빨리 료동지방으로 진격하라는 고려정부의 지시를 거역하고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되돌려세웠습니다.

그리고 반란군을 내몰아 개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개성을 점령한후 리성계는 최영을 비롯한 고려의 충신들을 잡아죽이거나 정배지로 보내고 자기가 정치적실권을 틀어쥐였습니다.

이처럼 리성계는 료동원정계획을 파탄시킴으로써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을 되찾을수 있는 좋은 기회를 수포로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리성계는 정치적실권을 틀어쥔 다음 왕까지도 제마음대로 떼거나 올려앉히였으며 생트집을 걸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놈은 자기가 왕이 되는것을 지지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정부에서 내쫓거나 죽여버리였습니다.

리성계일파는 자기 반대파들을 수많이 집단적으로 학살하였는데 여러 차례에 걸쳐 남해바다의 외진섬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배에 싣고가다가 깊은 바다에 처넣기도 하고 배밑에 구멍을 내여 바다물속에 가라앉히는 방법으로도 죽이였습니다.

전하는 자료들에 의하면 개성지방에 살던 왕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고려의 왕족후손이라고 하여 모조리 죽였다고 합니다.

이때 일부 살아남은 왕가성을 가진 사람들은 바빠맞아 성을 고쳐《옥》,《전》가 등으로 변성을 하여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반대파들을 다 없애치운 리성계는 1392년 7월에 드디여 고려의 마지막왕인 공양왕을 내쫓고 자기가 왕자리를 차지하였습니다.

이리하여 475년간 계속되여온 고려왕조는 끝장나고 리조봉건국가가 새로 세워지게 되였는데 나라이름은《조선》이라고 하였습니다.

리성계일파는 리조성립이후에도 계속 반대파들을 탄압하는 한편 명나라를 섬기는것을 나라 대외정책의 기본으로 내세우면서 큰 나라를 섬기고 굽신거리는 정책을 실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리성계의 배신적인 정권탈취를 반대하여 계속 싸우고있는 개성사람들이 반항을 피하기 위하여 오늘이 서울로 수도를 옮기였습니다.

모든 력사적사실들은 리성계가 우리 나라에서 사대주의를 적극 조장시킨 극단한 사대주의자이며 왕권을 빼앗기 위하여 우리 인민들이 그처럼 갈망하던 고구려, 발해의 옛땅을 되찾기 위한 료동원정을 말아먹은 장본인이였다는것을 보여줍니다.

하기에 당시의 개성사람들은 리성계를 극도로 미워하던 나머지 돼지고기를 《성계고기》라고 불렀습니다.

그것은 리성계를 돼지고기처럼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놈이라는 증오의 뜻에서 그렇게 말한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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