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상원 외교위원회가 23일 주최한 부시 행정부 출범후 첫 대북정책 청문회 ‘여기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서는 북한에 대한 이상론과 현실론이 맞물려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회의를 주도한 공화당의 제시 헬름스(Jesse Helms) 외교위원장은 북한 독재정권의 성격을 신랄하게 꼬집은 뒤, “침략과 무기 확산의 역사를 갖고 있는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고 초강경 입장을 내비쳤다.

반면 민주당의 조지프 바이든(Joseph Biden), 빌 넬슨(Bill Nelson) 의원은 클린턴 전 행정부의 정책 기조 위에서 대북협상의 필요성을 유도하는 질의를 계속 던졌다.

증인 4명의 입장도 팽팽하게 갈렸다.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 조지타운대 국제대학원 학장, 제임스 레이니(James Laney) 전 주한미대사는 부시 행정부에 대북협상 재개를 강력 촉구한 반면, 척 다운스(Chuck Downs) 전 국방부정책분석관과 북한에서 활동했던 독일 의사 노베트 폴러첸(Norbet Vollertsen)은 북한의 협상전략에 깊은 회의를 나타냈다.

지난 1994년 북한의 핵동결에 관한 제네바 기본합의를 타결한 갈루치 학장은 "기본합의 체결후 북한의 핵무기 계획이 동결된 것은 물론, 남북한간 긴장이 완화되고 북한이 세계 여러나라와 외교관계를 맺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 합의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되 만일 경수로의 화력발전소 대체 등 조건의 개선이 필요할 경우 반드시 동맹국인 한국 및 일본과의 협의를 거쳐 북한에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사일 협상과 관련, 대북 협상 무효론은 북한의 위협을 부각시키는 ‘외견상 만족스러운 수사’로 후퇴하는 것일 뿐 문제해결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면서 부시 행정부에 대북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레이니 전 대사는 부시 행정부가 한국과 함께 강력한 억지력을 유지하고,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지, 긴장을 완화하고 북한이 전세계를 향해 문호를 열도록 장려하며,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핵무기 및 미사일 위협을 종식시키는 것을 한반도 정책의 3대 근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한국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걱정이 한국내에서 점증하고 있다”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지지도는 폭락했지만 전반적인 대북 포용정책은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미 동맹관계를 강조하는 지난 50년간의 만트라(주문)를 부시 행정부가 계속 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북한으로부터 검증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하느냐는 바이든 의원의 질문에 “가능하지만 북한의 전례를 볼 때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다운스 전 국방부 정책분석관은 “북한은 기본 합의 서명 후 더욱 위협적인 군사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서 “부시 행정부는 철저하고 광범위한 정책 재검토를 해야 할 것”이라고 제네바 기본합의를 비판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오는 2003년까지 유예하겠다고 다짐한데 대해 “이는 이해가능하고 어쩌면 영리한 책략이지만 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협조를 끝낼지 모르고 부시 행정부와 한국에 압력을 가하려는 시도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운스는 또 레이니 전 대사가 한국정부가 북한으로부터 상호적인 반응을 얻었다고 주장한 데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왕복하며 유리한 조건을 획득하려 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폴러첸 박사는 “북한의 문제는 김정일 정권에 있으며 미국은 이들 주민을 위해 개입하고 더 많은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과 기자들을 북한에 보내 감시토록 하라”고 촉구했다. 그는 “대북 햇볕정책의 기본 방향은 지지하지만 북한 인권에 대해서도 얘기해야 한다”며 “이에 대한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워싱턴=주용중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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