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타운 대학과 아시아 재단이 22일 공동 주최한 ‘남북 정상회담 원탁 토론회’는 한국과 미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들의 입을 통해 양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조명할 수 있는 자리였다.

공화당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의 외교 정책 자문을 맡고 있는 폴 월포위츠(존스 홉킨스대 국제대학장), 로버트 갈루치(조지타운대 국제대학장), 찰스 다운스(미 하원 공화당 정책위원회 외교국방 선임 고문), 데이비드 시어(국무부 한국 담당관), 커트 켐펠(전 국방 차관보),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 미대사) 등 미국측 참가자들은 정상회담의 역사적 의미에 대해 한결같이 긍정적인 평가를 하면서도, 각자의 스펙트럼에 따라 회담 결과에 대해 의문 부호를 달거나 다소 회의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미국측 참가자들은 “환영할 만한 일”(찰스 다운스), “햇볕 정책의 성공”(폴 월포위츠), “한국의 주변 4강대국에 대한 외교 주도권의 신장”(도널드 그레그) 등의 표현을 사용, 일단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폴 월포위츠는 “북한이 핵 개발 의도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는데다 근본적인 정책의 변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라며 “앞으로 국제적인 금융 지원이 무분별하게 북한에 제공될 경우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로버트 갈루치도 “북한이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하려 들지도 모른다”며 “지난 반세기동안 한반도가 안고 있던 취약성은 여전히 잠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보수 논객으로 클린턴 행정부의 포용 정책을 앞장서 비판해 온 찰스 다운스는 북한의 그간 협상 행태를 조목조목 분석하며, “결국은 북한이 주한 미군 철수 문제를 들고 나와 회담을 깰 것”이라며 “앞으로 몇 달 내에 북한은 다시 도발적인 행동을 취할 것으로 관측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남한에 대해 유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언제나 한·미 동맹 관계를 이간시키거나 한국 내에 분열을 야기시키기 위한 노림수였다”며 “북한이 남한을 적화하려는 목표를 변경했다는 신호는 없다”고 말했다. 도널드 그레그는 “한국의 여당이 소수당이기 때문에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공감대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북한의 예기치 않은 돌발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트 켐펠은 한·미·일 3국간 공조를 유난히 강조하면서, “정상회담 후 이같은 모임을 다시 열어 복기(복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측의 이홍구(이홍구) 주미 대사와 한승주(한승주) 전 외무장관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도외시되는 것 아니냐는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했다. 이 대사는 “미국이 한국과는 달리 의제와 공동 성명을 중시하는 것은 문화 차이 때문”이라며 회담의 실질적 내용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한 전 장관은 “의제 여부와 상관없이 정상회담 자체가 북한의 무기 개발에 대한 억제력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한·미가 정상 회담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미국은 한국의 통일 열망을 이해하고, 한국은 미국 등 주변국들이 한반도에 갖고 있는 이해관계를 수용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이 대사는 “정상회담은 단지 시작이긴 하지만, 냉전의 마지막 장은 이미 쓰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주용중기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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