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박지원·58) 문화관광부 장관이 오늘(24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그는 지난 1년간 여권의 실세 장관으로서 문화예산 1% 확보, 기무사 이전 결정, 게임산업 육성 등 성과를 거두었다. 김태익(김태익) 문화부장이 22일 문화관광부 장관실에서 박 장관을 만나 문화계 현안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편집자

―취임 직후 “가장 상냥하고 친절해야 할 문화관광부 직원들이 복도에서 만나도 웃으면서 인사하는 법이 없다”며 호통을 쳤었는데…. 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벌써 1년인가요? 세월 참 빠릅니다. 이제는 직원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릴 때 여성을 먼저 배려하는 정도의 변화는 있습니다. ”

―장관은 처음이시지요? 문화부 장관이란 자리가 있어보니 어떻던가요?또 밖에서 본 문화계와 막상 안에 들어와서 본 문화계는 어떻게 다르던가요?

“문화관광부는 끼가 있는 부서입니다. 무려 7개 분야를 맡고 있고 각각이 다 전문적입니다. 따라서 장관은 고도의 정치적 센스와 판단을 요구하는 자리라고 봅니다. 1년 동안 가장 역점을 둔 것은 문화예술인들과의 스킨십을 높이는 일이었습니다. 정말 자존심과 예술혼만으로 버티는 분들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

―최근 문화계의 가장 큰 이슈가 풍납토성 보존문제입니다. 정부가 보존방침은 천명했지만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모호한 것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문화재 지정 범위와 보상 재원 조달방법은 어떻습니까?

“굴삭기 훼손으로 문제된 경당연립 지역은 확실하게 보존될 것입니다. 주민들의 피해보상비 마련은 추경예산에 포함시키거나, 서울시와 협의하는 등 다각도로 방안을 마련 중입니다. 전체 지역은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전문가들로 공동조사팀을 구성해 가급적 연말까지 풍납토성에 관한 마스터플랜을 수립토록 하겠습니다. ”

―문화재 보존과 지역개발 논란과 관련해 경주경마장 건설 여부도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서 우리의 기본 입장은 선조들에게 부끄러운 후손이 돼서는 안되겠다는 것입니다. 경주경마장 건설을 위해 이미 마사회에서 100억~200억원이 투자됐다지만 그건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유물이 나오고 있는 지역을 훼손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문화재 위원회가 지금까지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7월중 판단을 내릴 것입니다. ”

―문화계 여망이었던 경복궁 옆 기무사 이전 문제는 이전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습니다. 이곳을 앞으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십니까?

“어려운 결단을 내려준 군 당국과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사찰들도 시내에 들어서고 있는 마당인데 현대미술관이 과천 산 속에 박혀있는 것은 곤란하다는 게 취임 초부터의 제 문제제기였습니다. 경복궁 인사동과 연결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한국 대표 문화벨트로 조성한다는 것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역시 이 자리는 미술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한국 미술가 백남준 기념관이나 현대미술관 분관을 들어서게 하는 방법은 생각해 볼 만한 것입니다. ”

―며칠 전 폐막된 칸 영화제에서도 그렇고, 국내외적으로 한국 영화 르네상스가 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취임 후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등급외 전용관(성인전용관)이 국회에서 보류됐는데….

“창작의 자유와 청소년 보호라는 도덕적 측면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등급외 전용관 외에 대안이 없습니다. 여론조사에서도 86% 찬성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에선 포르노 영화관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은 형법으로 규제하고 있으니 문제되지 않습니다. 16대 국회에서 다시 추진하겠습니다. ”

―일본 대중문화 개방과 관련, 곧 3차 개방조치가 있다고 하는데 개방시기와 폭은 어느 정도가 되겠습니까?

“5월 말 나오는 영향평가를 토대로 6월 중에 구체적인 개방범위를 확정 발표하겠습니다. 이미 1~2차 개방에서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우리 문화가 일본에 더 많이 소개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

―장관은 참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의 밀사로 등장하시더니 대종상 시상식에는 이미숙씨와 손잡고 나오시더군요. 옷 잘 입는 남성으로 뽑히기도 하고, 언론대책 전문가의 이미지도 여전히 갖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행정가, 참모 중 어디에 자신의 본령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제 좌우명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인으로 대통령도 모셨지만 문화관광부 장관으로서도 최선을 다할 뿐 제 아이덴티티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대종상 시상식은 주최 측이 나와달라 해서 나간 것이고, 실은 이미숙씨에게 손을 잡혔던 겁니다. ”

―장관께서는 취임 초 자신이 대통령의 입노릇을 8년 넘게 했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입 또는 말(언)과 문화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겁니까?

“문화적 소양이 있어야 좋은 입이 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내용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잘 다듬어진 언어는 고도의 상징체계요, 문화의 꽃이라고 봅니다. ”

―일각에서는 언론 주무 장관으로서 통합방송법 제정이라든지 최근의 방송계 인사 관여 등을 통해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는 얘기가 계속 나왔습니다만.

“국민의 정부 들어 언론의 협조를 구한 적은 있어도 간섭은 한 적이 없고, 간섭할 생각도 없습니다. 방송국 사장이나 이사 선임도 절차상 어느 한 사람의 결정만으론 임명되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 저 그렇게 파워풀한 사람 아닙니다. ”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나면 교류도 확대될 텐데 문화 분야의 교류전망은 어떻습니까?

“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문화, 관광, 체육 교류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차관을 단장으로 남북문화관광교류준비단을 구성해 교류 협력 프로그램을 마련 중입니다. 또 ‘불가사리’란 북한영화의 심의요청이 들어왔는데 이념성이나 이적성이 없고 실정법도 위반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돼 정상회담 후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상영을 허가하겠습니다.

―우리 문화도 북한에서 상응하는 개방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합니다. 다만 과거 동·서독 사례처럼 상호주의를 포기하지 않되 무작정 고집하지도 않을 겁니다. 우리부터 교류협력하면 북한도 문을 열 것입니다. ”

―직원들에겐 인기있는 실세 장관입니다. 국민들에겐 어떤 문화부 장관으로 기억되길 바라십니까?

“우리 문화의 국제경쟁력을 가능케 한 장관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

/정리=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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