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주민들은 직장 동료나 주위 사람을 부를 때 ‘동무’라고 한다. 동무는 평상시에 알고 지내는 사람정도를 일컫는다. ‘친구’라는 말은 웬만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쓰지 않는다. 남한의 친구보다 훨씬 끈끈한 관계다. 친구 중에서도 정말 가까운 친구는 ‘딱 친구’나 ‘알쌈이’로 부른다.

북한처럼 사회적 감시가 철저하고 이때문에 인간관계의 불신이 심한 사회에서 친구의 존재는 더 없이 소중하다. 레닌이 했다고 전해지는 ‘나는 많은 사람들을 사귀지 않고 적은 사람을 깊이 사귄다’ 는 말은 북한 젊은이들의 신조다.

북한체제가 아무리 무서워도 친구 사이엔 못할 말이 없다. 체제비난은 물론 김정일의 풍자나 비판도 서슴없이 한다. 만약 친구가 밀고하면 끝장이기 때문에 서로 속마음을 터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생사를 함께 하는 것이다.

청소년들 사이에는 손에 피를 내 ‘혈서’를 쓰면서 친구나 의형제 다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친구인지 아닌지는 감옥에 갔을 때라야 입증된다. 가령 남한노래를 함께 부른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끌려가면 나머지는 밤잠을 잘 수 없다. 친구들 이름을 대는가 끝까지 버티는가가 우정의 시험대다. 심한 고문에도 끝까지 친구들을 보호한 경우에는 젊은이들 사이에 우상으로 통한다. 친구를 지키느라 총살까지 감수한 젊은이들도 있다. 부모들은 친구를 만나려면 그런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자식들에게 강조한다.

북한 젊은이들은 정말 친한 친구는 세 명이 이상 잘 두지 않는다. 친구가 많을수록 위험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친한 친구는 대개 소꿉시절부터 함께 자란 경우다. 어릴 적부터 오래 사귄 친구가 역시 믿을 만하고 마음이 통한다. 물론 학교나 직장에서 새로운 친구도 많이 생겨난다.

한번 친구로 정해지면 한 가족이나 다름없다. 친구의 부모는 곧 자신의 부모이고, 자식의 친구는 친자식과 다름없다. 관혼상제 등 친구의 집안 일도 곧 자신의 일처럼 여긴다. 북한 사람들에게 친구간의 우정은 사회가 각박해질수록 더욱 깊어지는 인정의 샘과 같은 것이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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