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참가하는 이른바 '1호행사'에서 환호하는 평양 시민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등장하는 군중행사를 "1호행사"라고 한다. 작년 남북정상회담의 경우가 대표적인 1호행사다.

1호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들은 철저한 신원조사 끝에 미리 정해진다. 특혜는 없지만 안 뽑히면 심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무엇보다 동료들이 행사에 동원돼 나간 뒤 가중한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 1호행사 참가 대상자들은 지방에 출장간 경우에도 행사 5일전까지는 평양으로 돌아와야 한다.

행사전 ‘정치교양’은 기본 과정이다. 김대중 대통령 방북의 경우 행사 참가자들에게 남한대통령의 방문 의미 등을 사전에 교육하는 과정이다.

길가에서 꽃이나 국기를 흔들며 열렬히 소리치는 ‘연도환영’에는 공민증을 보여 ‘1호행사 대상자’로 확인된 사람만 낄 수 있다. 행사가 진행되는 장소에서 일정한 거리까지를 기본선으로 정하고, 그 바깥을 ‘예비선’이라고 하는데 참가자들은 행사 시작 1시간 전까지는 예비선에서 대기해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은 "당적’(黨的) 차원에서 준비된다. 상급당에서 하급당으로 확실한 지휘체계 아래 도시의 미화에서 참가인원 동원까지 일사불란하게 이뤄진다. 손에 들 ‘가장물’(진달래꽃이나 국기 등)의 색깔과 종류가 통보되면 참가자들은 각 기관의 구역행사위원회에 가서 재료를 받아 만들어 쓰게 된다. 참가자들은 용의와 복장에서도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한다. 여자는 치마 저고리 또는 가끔 반양장 의상을, 남자는 넥타이와 와이셔츠를 갖춘 정장이 기본이다. 옷이 없는 사람은 당에 건의해 배정표를 받아서 사서 입게 된다. 이 경우 국정가격으로 비교적 싸게 살 수 있지만 부담은 된다.

외국 손님에게 꽃다발을 주는 의식은 영화나 연극배우들, 그리고 소년 소녀들이 주로 맡는다. 그 밖에도 유모차를 끌고 특정지역을 지나가야 하는 아낙네, 붉은 넥타이에 소년단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지나가야 하는 인민학생 등도 정해진다. 백화점에서 평양을 방문한 외국의 고위인사가 나타날 때를 기다려 물건을 사고 파는 역만 종일 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행사에 참가할 수 없거나 특정한 역할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집안에 머물러 있도록 유도된다. 부득이 바깥나들이를 할 때에도 여자는 머리에 물건을 일 수 없고, 아이를 띠로 업을 수 없으며, 자전거를 탈 수 없고, 바지를 입을 수 없다. 남자도 정장차림이 기본이다.

이런 것을 단속하는 것은 시내 곳곳에 배치되는 노동자나 대학생 규찰대가 맡는다. 중요한 행사는 최소 3일 이상의 반복된 리허설로 평양이 완벽한 ‘세트장’으로 꾸려지고 난 후에 비로소 치러진다.

/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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