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의 안경상점. 북한에는 안경만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이 평양에만 있고 지방에는 없다.

북한에서 안경 낀 사람은 흔치 않다. 젊은층일수록 또 지방으로 갈수록 더욱 드물다. TV나 컴퓨터 등으로 시력이 나빠진 사람이 남한만큼 많지 않은데다, 안경 자체가 여간 구하기 힘든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민군 병사들 가운데 안경 낀 사람은 아예 없다. 입대 전 두 차례의 신체검사 과정에서 시력이 나쁜 사람은 초모(징집)에서 제외된다. 군 복무 중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껴야 할 형편이라면 감정제대(의병제대)시킨다. 군관(장교)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안경 낀 사람이 더러 있는데 대개 참모부서나 화학·병기 등 비전투 병과라고 보면 틀림없다.

안경이 꼭 필요한 사람은 북한산 제품이나 외국에서 들여온 안경을 쓴다. 외제 안경은 고위 간부나 일부 부유층들의 몫이다.

북한산 안경은 광학제품을 생산하는 유리공장, 제2경제위원회 산하 군수품 생산공장의 일부 생산라인, 부산물·폐산물로 각종 생필품(8·3인민소비품)을 만드는 가내작업반 등에서 생산된다. 순전히 안경만 전문으로 생산하는 공장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북한산은 외제에 비해 품질이 현격히 떨어지는 데다 디자인이나 패션 개념이 전혀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겉모양만 봐도 금방 구별된다.

외제 안경이 거의 금테인데 반해 북한산은 대부분 뿔테다. 안경알은 100% 유리이고 플라스틱 제품은 아직 없다. 그나마도 렌즈가 큰 것 일색이어서 상당히 무겁다. 여름이면 땀에 젖어 자꾸 흘러내리고 겨울에는 얼음장처럼 차가워 여간 불편하지 않다. 게다가 렌즈의 소재가 텔레비전 브라운관 만들 때 쓰는 두꺼운 유리여서 안경 낀 모습을 보면 마치 도수 높은 돋보기를 낀 것처럼 우스꽝스럽다. 주민들이 안경을 기피하는 한 이유다.

북한 전역에 안경 전문 상점은 두 세 군데에 불과하다. 그것도 평양에만 있고 지방에는 없다. 이 때문에 지방 주민이 안경을 낀다는 것은 큰 모험을 하는 것과 같다. 평양의 전문 안경점도 인구가 밀집돼 있는 중구역에 두 곳, 보통강구역에 하나 있다. 중구역에는 대동교와 옥류교 근처에 하나씩 있는데 이곳에서는 북한산 안경만을 판매한다.

도수도 디옵터로 -3, -1.5, -1 세 가지만 있고 -4 이하는 없다. 고도 근시나 난시 안경은 특수 주문을 해야 하는데 6개월∼1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또 알과 테를 각각 골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완제품 형태로 팔기 때문에 자기 눈에 꼭 맞는 안경을 고르기가 쉽지 않다.

보통강구역 서장동에 있는 서장안경방은 외제 안경만을 취급하는 외화상점이다. 이곳에서는 시력검사도 해주고 제대로 된 기구와 장비를 갖추고 있어 취향에 따라 색상과 디자인을 선택할 수 있다. 물론 북한산에 비해 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평양의 큰 백화점에도 안경매대(賣臺)가 있지만 진열된 안경은 몇 개 되지 않고 그나마도 돋보기 안경뿐이다. 식량난의 여파로 장마당이 활성화되면서 이곳에 안경이 곧잘 눈에 띄기도 하는데 중국산이 많다. 값은 대개 150∼200원으로 노동자 평균 월급(100원) 을 훨씬 상회한다.

안경을 끼다보면 수리를 받아야 할 상황도 생긴다. 특히 북한산은 안경알이 잘 빠지고, 테와 다리를 연결하는 나사못이 금방 헐렁해지거나 탄력이 떨어진다. 평양의 경우 구역(서울의 區에 해당)마다 하나씩 있는 "종합수리"(편의봉사소)에 가서 고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시계, 자전거, 텔레비전 등 온갖 것들을 고쳐주는데 특히 손재주가 필요한 시계·안경 수리공의 인기가 높다.

지방에는 군(郡) 소재지에 편의봉사소가 하나씩 있지만 부품이 없어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안경알이 깨지거나 다리가 부러지면 반창고로 감고 실로 찬찬히 동여매 끼고 다닌다. 안경알에 금이 가고, 한쪽 알이 없어도 그냥 끼고 다닐 수밖에 없는데 북한에서 이런 모습은 전혀 부끄러움이나 흉이 되지 않는다. 평양으로 출장 가는 사람들에게 쏟아지는 민원품목 가운데 안경이 앞자리를 차지한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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