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정부가 대북정책의 골간을 세우는 막바지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불거지고 있는 미국 대북정책 책임자들의 잇단 발언은 부시의 대북정책이 출범 초기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제 추진과정에서는 보다 「현실화」될 것이라던 일부의 관측을 비켜가고 있는 것이다.

파월 국무장관은 14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북 포용정책의 기조에 따라 대화재개 방침을 밝히면서도 「미국이 선택한 시기와 장소에서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해 대화를 하되 북한 페이스에 말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는 또 대화재개도 어떤 대북감시 및 검증체제가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뒤에 하겠다고 밝혀 「검증과 감시」를 또 꺼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같은 날 열린 각국 보수정당 모임인 국제민주연합(IDU) 정책설명회에서 파월 장관의 발언을 보다 구체화했다. 북한과 대화를 하더라도 「김정일 위원장과 하게 될 모든 일의 핵심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강력한 검증장치를 마련할 것」이며 글자 그대로의 상호주의를 하겠다고 했다. 비공개로 진행된 그 모임에 참석했던 한나라당 박원홍 의원이 한국 특파원들에게 제공한 녹취록에 따르면 라이스 보좌관은 북한이 자주 사용해왔던 벼랑끝 전술(brinkmanship)도 비판하면서 미국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했다. 라이스는 『김 위원장은 과거 수년 동안 무엇인가 하겠다고 위협하고 실제로 무엇인가 하는 행동에 익숙해져 있으며, 그럴 경우 모든 사람이 그를 앞다퉈 진정시키려 함으로써 그는 반대급부를 받았다』며 『부시 대통령은 그같은 북한의 행동을 다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 왔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2003년까지 유예한 것은 부시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 주효한 결과라는 것도 덧붙였다. 이것은 전임 클린턴 정부의 유화적인 대북전술을 비판한 것이면서 동시에 부시 정부의 대북전술이 전 정권과는 다를 것임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또 최근들어 북한과 접촉빈도를 높이고 있는 EU 등 다른 나라들에 미국이 던지는 「전술변화」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선공후득」을 기조로 삼아왔던 현 정부의 대북정책과는 출발점이 다른 것 같다. 이달 말로 예정된 한·미·일 대북정책 조정회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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