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양 애국국수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주민들.

북한 사람들이 식당에 가서 음식을 사먹을 때 반드시 지참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우리 상식으로는 당연히 돈을 제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북한에서는 돈과 함께 양권(糧券)을 필수적으로 가지고 가야 한다.

북한에서 양권은 식량을 대신하는 표로 사실상 식량이나 다름없다. 북한 「조선말대사전」도 양권에 대해 '국가기관에서 발행한 식량을 대신하는 증표'라고 설명하고 있다.

16일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돈과 함께 양권이 있어야 식당에서 음식을 사먹을 수 있고 식료품상점에서 판매하는 국수나 빵 등을 구입할 수 있으며 출장시 여관 등에서 식사도 제공받을 수 있다.

외화식당과 농민시장, 일부 불법 운영되는 개인식당을 제외하고 음식을 파는 곳이라면 돈과 함께 양권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자녀들을 탁아소ㆍ유치원에 맡길 때에도 매월 1∼2회 정도 자녀의 한달분 양식용으로 양권을 내야 한다.

이 때문에 남한에서는 양권이 매우 생소한 말이지만 북한에서는 어른은 물론 어린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사람이 없다.

다만 도시에서만 통용될 뿐 가을에 한번씩 분배를 받는 협동농장에서는 양권이 사용되지 않는다.

북한의 양권을 자칫 우리의 식권과 같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다른 개념이다.

우리의 식권이 음식과 바꾸는 표라면 북한의 양권은 식량과 바꾸는 표다.

북한에도 남한과 같은 식권이 있다. 남한에서 자사 종업원을 위한 식당을 운영하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권을 발급하는 것처럼 북한에서도 군인식당이나 기관ㆍ기업소에서 종업원용 식당을 운영하면서 식권을 발급한다.

하지만 남한에서는 돈만 내면 식권을 입수할 수 있지만 북한에서는 곡물을 직접 내거나 그것을 대신하는 양권을 돈과 함께 내야만 식권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양권은 가정용과 출장용이 있으며 200gㆍ600gㆍ1㎏짜리로 각각 구분돼 있다.

그중 가정용 양권은 백미와 잡곡으로 나눠져 있으며, 출장용 양권은 그러한 구분 없이 그 자체에 백미와 잡곡이 모두 포함돼 있고 200g짜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출장시 여관 등에 묵을 때에는 출장용 양권을 내야 하며 식료품상점에서 밀가루식품 등을 구입할 때에는 가정용 양권이 필요하다. 일반 식당에서는 가정용과 출장용이 모두 통용된다.

양권 발행은 내각 수매양정성에서 전담하며 가정용 양권은 지역 식량배급소에서, 출장용 양권은 종사하는 기관ㆍ기업소에서 본인의 요구에 따라 필요한 양만큼 각각 발급하고 있다.

양권이 식량을 대신하는 만큼 식량배급소나 기관ㆍ기업소에서 양권을 발급 받으면 그만한 양의 식량이 배급될 총량에서 삭감된다.

식량을 양권과 교환할 때에는 그 양만큼 양권을 받을 수 있지만 양권을 식량과 바꿀 때에는 양권에 표시된 수량을 전부 받을 수 없고 10%정도 공제하므로 손해를 본다.

따라서 주민들은 양권을 필요한 양 외에는 함부로 발급받지 않으며, 반면 양정부문에서 일하는 일부 사람들은 불법으로 양권을 얻어 식량과 바꾸기도 한다.

농민시장에서도 양권은 북한 원화 1원50전 내지 2원 정도에서 매매되고 있다.

북한에서 양권이 처음 나온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50년대 후반께로 전해지고 있다.

양권이 발행된 목적은 국가에서 개인에게 지정해준 양 외에는 더 소비하지 못하도록 규제함으로써 식량의 고른 분배와 낭비를 막으려는 의도로 분석되고 있다.

가령 김모씨가 직장에서 배급받은 식량을 그대로 둔 채 다른 지방으로 출장을 가서 양권 없이 식사를 할 경우 그가 배급받았던 식량은 전부 남게 되므로 국가적으로 볼 때는 그만큼 낭비되는 셈이다.

한편 북한에서는 양권을 양표(糧票)라고도 부르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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