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2000년 8월 오사카에서 열린 WBC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타이틀매치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홍창수(왼쪽)가 남한의 조인주(오른쪽)와 경기하고 있다.

북한에서의 프로복싱 역사는 10년을 헤아린다.

지난해 8월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계 3세동포로서 `조선적'(북한 국적)을 갖고 있는 홍창수(洪昌守.27)가 남한의 조인주(32)로부터 WBC(세계복싱평의회) 슈퍼플라이급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 새 왕좌에 올랐다.

홍 선수가 세계 챔피언에 등극하자 북한은 그에게 `인민체육인'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제1급'을 수여했다. 조총련계 동포 선수로서 세계 챔피언에 오른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방송들은 지난해 8월 홍 선수 소식을 보도하면서 '재일동포 선수가 세계 패권을 쟁취한 것은 프로권투 역사상 첫 쾌거'라며 '동포들은 물론 온 겨레의 가슴마다에 크나큰 기쁨과 주체 조선의 해외 공민된 높은 자부심과 긍지를 안겨 주었다'고 평했다.

이 두 선수가 오는 20일 서울에서 재대결을 갖는다. 홍 선수가 조총련계 동포여서 프로복싱 사상 최초로 평양에서 타이틀 매치를 벌이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무산됐다.

북한은 복싱을 적극 장려하고 있다. 북한 언론들은 '권투경기는 몸을 재빠르고 날래게 할 뿐만 아니라 팔을 비롯한 웃몸(상체)의 힘을 세게 하며 완강한 투지와 인내력 등을 키워줄 수 있어 매우 효과적인 운동'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북한에서 프로복싱이 처음 도입된 것은 92년 7월이다. 이 때 북한 `프로권투협회'가 결성되었으며 이듬해 4월 평양 청춘거리 중(重)경기장에서 북한 최초로 `93공화국 프로권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는 `4.25체육선수단' `압록강선수단' 등 9개 선수단, 67명의 선수가 참가했는데 예선 4회전, 준결승 6회전, 결승 8회전을 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당시 북한 중앙TV에 따르면 이 대회에서는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라운드 걸이 피켓을 들고 돌아 눈길을 끌었으며 링 아나운서가 채점결과를 발표했다.

프로복싱의 도입은 김정일 노동당 총비서가 87년 '권투는 조선사람들의 기상을 높여주는 좋은 운동이다. 이제까지 아마추어에서 좋은 성적을 냈으니 프로의 국제마당에 나가야 한다'고 말한데 따라 취해진 조치이다.

이에 따라 95년에는 세계권투평의회(WBC)에, 97년에는 세계권투협의회(WBA)와 범아시아권투협회(PABA)에 잇따라 가입하면서 세계프로권복싱계에 모습을 나타냈다.

북한 프로복싱 등록선수는 200∼300명 정도인데, 대부분의 프로선수들은 아마추어를 거쳐 6회전의 프로테스트를 통과해야 되며 체육지도위원회 산하 체육과학연구원의 정기적인 검사와 영양사들의 영양 관리를 통해 과학적으로 육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프로복싱의 선두주자는 '92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최철수(압록강체육선수단 소속)가 꼽힌다. 그는 95년 2월 평양에서 프로데뷔전을 가졌으며 96년 일본에 진출, 프로복서로서의 길을 걸었다. 98년 8월에는 PABA 페더급 챔피언벨트를 차지했다.

96년 당시 최 선수와 함께 일본에 진출한 두 선수는 주니어 플라이급 최평국과 웰터급 김혁이었다.

지난 99년 8월 개최된 남북한 프로복싱 대결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모두 승리했다. 중국에서 처음 열린 남북 프로복싱 대결에서 북한의 김기환, 최평국은 뛰어난 기량과 근성으로 남한 선수들을 모두 물리쳤다.

북한의 프로복싱은 국제무대에서 활기를 찾지 못하고 있는 편이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프로스포츠가 활성화 될 수 없는 토양과 90년대 초반까지 강세를 보인던 아마추어 복싱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최근 홍 선수가 세계 챔피언에 오르면서 북한에서 복싱 붐이 일고 있으며 북한 청소년들로부터 그는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북한은 지난해 8월 치러진 홍창수-조인주 전을 그해 11월 중앙TV를 통해 방영했고, 이를 본 청소년들이 홍 선수처럼 세계 챔피언이 되겠다며 권투구락부에 무더기로 가입했다고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지난해 11월 보도했다.

홍 선수는 지난 90년 총련계 조선중급학교에 입학하면서 복싱을 시작, 94년 프로로 데뷔했고 96년 제42회 전일본프로권투대회에서 플라이급 신인왕의 영예를 차지했다.

98년에는 일본 플라이급 랭킹 1위에 올라섰고 99년에는 태국의 폰 사엥모라코를 판정승으로 누르고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슈퍼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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