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사라질 경우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를 검토하고 향후 중국과의 무력 충돌에 대비, 아시아 주둔 미 군사력의 핵심을 대만 인근 지역으로 옮겨 재배치해야 한다는 미 국방부 용역 보고서가 공개됐다.

미국의 랜드(RAND)연구소는 14일(현지시각) 발표한 ‘미국과 아시아-미국의 새 전략과 군사대응 태세를 위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남북한의 통일과 화해, 북한의 붕괴 등으로 한반도에서 전쟁 위협이 사라질 경우 주한미군 2사단과 오산과 군산 공군기지 등에 대한 일부 폐쇄 또는 감축을 검토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통일한국과 관련, “통일한국은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킬 것인지 ▲남북한을 합친 군사력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특히 북한의 탄도미사일과 핵무기 관련 프로그램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중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관해 근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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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의 국방부 인수팀장을 지냈으며, 이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에 임명된 잘메이 칼릴자드(Zalmay Khalilzad)가 작성 책임자인 이 보고서는 “현재 아시아 지역 최대 현안은 대만에 대한 중국의 군사위협”이라며 그 대책으로 일본 오키나와(沖繩) 남쪽 시모지시마(下地島)에 새로운 공군기지 건설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또 필리핀에 공군 발진 기지를 확보하고 여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해·공군력이 기동성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미국령 괌을 아시아의 ‘중추기지’로 활용할 것을 권고했다. 보고서는 일본 남단 류큐(琉球)제도에 새롭게 군사력을 배치하고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에도 군사력을 배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랜드연구소의 이번 보고서는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이 조만간 국방 전략 재검토 결과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번 보고서는 21세기 아시아 안보환경 변화에 대비, 미군의 새로운 전략적 틀을 제시한 것이다. 미 공군의 용역에 의해 만들어졌고, 작성 책임자가 이날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으로 임명된 자말리 칼리자드라는 점에서 이 보고서는 향후 미국의 국방전략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기존의 쌍무 안보협정 강화 중국과 인도, 러시아 가운데 어느 나라도 패권국이 되지 않도록 세력균형 추구 아시아의 모든 나라를 포괄하는 안보대화 증진 등을 전략적 목표로 제시했다.

한국의 입장에서 이 보고서는 한반도의 전쟁 위협이 사라질 경우 주한미군의 일부 철수를 공식 제기하고, 남북한이 통일될 경우 동아시아에 끼칠 안보환경 변화를 진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남북한의 긴장이 계속될 경우에는 북한의 미사일이 화학 및 핵 탄두와 결합, 주한 미 공군의 작전능력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분석한 뒤 미 공군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18개의 각종 위원회를 두고 있는 도널드 럼즈펠드(Donald Rumsfeld) 국방장관이 다음주 발표할 미국의 국방전략 재검토 결과에 이같은 내용이 어느 정도 수용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다음은 보고서의 주요 내용을 발췌, 요약한 것이다.

한반도 관련=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이 사라질 경우 미국 내부와 남북한·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가로부터 주한미군 철수 압력이 거세질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군 철수를 남한과의 통일에 전제조건으로 주장해왔고, 중국·러시아도 주한미군을 몰아내거나 최소한 줄이도록 한국에 요구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미군 주둔 분담금 납부에 저항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미군의 영향력과 존재를 줄이는 것이 불가피하며, 전략적 기동성을 갖추지 않은 보병 2사단이 병력감축의 첫번째 선택이 될 수 있다. 또 오산과 군산의 공군기지 중 1개 기지를 폐쇄하고 1~2개 비행대대를 괌 등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것의 의미를 검토할 준비를 해야 한다. 하지만 최소한의 주한미군 병력은 유지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동아시아에서 미군이 주둔한 유일한 나라가 될 일본에서 미군에 비우호적인 여론이 더욱 나빠질 것이다.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될 경우에는 미 공군은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처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중국은 한국이 통일될 경우 주한미군이 대만 보호라는 지역주둔군 역할을 하게 될 경우를 우려하고 있으며, 통일한국을 묵인하는 대가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중국 경계와 대만 보호=중국은 아시아 지역의 안정을 뒤흔들 수 있는 떠오르는 세력이다. 중국과 인도, 러시아 세 나라가 상호 세력균형을 유지하도록 함으로써 어느 한쪽이 패권을 행사하거나 연합해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사시 대만을 지원할 수 있도록 미 해군 및 공군기지를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 남중국해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해·공군력이 기동성있게 움직일 수 있도록 괌을 아시아의 중추기지로 활용하고, 일본 남단 류큐(琉球)제도에 군사력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오키나와(沖繩) 남쪽의 시모지시마(下地島)에 공군기지를 만들고 공군력을 증강배치해야 한다. 시모지시마는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불과 45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유사시 전초기지로 활용할 수 있는 데다 3000m급의 활주로를 갖춘 비행장을 갖추고 있다는 이점도 있다. 주일미군 중 절반이 넘는 2만6000여 병력이 주둔하고 있는 오키나와 기지의 축소도 반드시 검토돼야 할 현안이다. 장기적으로는 베트남에도 군사력 배치가 필요하다.
/워싱턴=주용중 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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