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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비서' 선우진씨가 말하는 김구 환국과 남북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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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5.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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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진씨는“백범 선생은 일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지도자”라고 말했다. 액자 속 사진은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38선을 넘으며 찍은 것이다. 백범 왼쪽이 선우진씨, 오른쪽은 김구의 아들 김신씨. 조인원기자join1@chosun.com

"백범은 자리 연연않고 나라에 헌신.
국부는 이박사밖에 없다고 하셨어"


“백범 선생이 이(승만) 박사와 사이가 안 좋았다고요? 아니에요. 선생은 외교적 수완이 좋은 이 박사가 초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어디 가든지 얘기하셨어요.

백범 선생은 임시정부 환영식을 할 때 ‘국부(國父) 김구 선생’이라고 소개하면 ‘국부가 둘일 수 있나. 국부는 이 박사밖에 없다’고 하셨어요. 선생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일생을 가난하게 살면서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입니다.”

선우진(鮮于鎭·84). 광복부터 1949년까지 4년간 임정 주석 김구(金九)와 늘 함께했다. 스물넷부터 스물여덟까지, 그의 20대 후반은 ‘거인(巨人)’ 김구로 채워져 있다.

그는 1945년 11월 23일 27년간 망명생활을 한 김구와 함께 고국으로 돌아왔고, 1948년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는 김구를 따라 38선을 넘었다.

1949년 6월 26일 ‘거인’이 육군 소위 안두희의 총탄에 최후를 맞을 때도 그는 현장에 있었다. 서울 양평동 자택에서 만난 그는 60년 전 일을 바로 어제처럼 또렷이 기억했다.

日패망 소식 듣고 나라 어찌될까 걱정 앞서

임정요인들 환국때 환영인파 없어 서글펐지

청년 500여명 경교장 뜰에 누워 평양방문 막아


―언제부터 김구 선생 비서로 활동하셨나요?

“비서란 말은 해방 후에 붙여진 이름이에요. 나는 임정 내무부 소속 경위대원이었어요. 우리 집안 분위기가 독립운동과 관계가 있었지요. 할아버지(선우정·鮮于楨)가 남만주 환인현(桓仁縣)에서 한의사를 하면서 요즘으로 말하면 교민회장인 ‘총관’ 일을 맡으셨어요.

독립운동가 양세봉 장군과도 친하셨지요. 나는 무순중학을 졸업하고 길림성 반석에 있는 친척네 상점에서 일하다 학병(學兵) 징병을 피해 산해관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갔어요. 1944년 봄 한국 광복군을 훈련시키는 중국 황포군관학교 제10분교에서 3개월 훈련받았지요. 학병을 탈출한 50명과 함께였어요. 그리고 1945년 2월 초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했지요. 해방 후에는 자연스럽게 백범 선생을 계속 모시게 됐습니다.”

맥아더와 협상 늦어져 환국 지연

―임시정부 요인들이 광복 후 환국할 때까지 석 달이나 걸렸는데요.

“미국의 중국전구(中國戰區·사령관 웨드마이어)에 속해 있던 한반도가 종전 후엔 태평양전구(太平洋戰區·사령관 맥아더)로 바뀌었거든요. 미국과 협상이 늦어졌어요. 웨드마이어 사령관은 임시정부에 우호적이었는데, 맥아더 사령관과는 처음부터 새로 연락해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중국 장개석(蔣介石) 총통을 통해 ‘임시정부를 한국의 과도정부로 승인해달라’고 요청했는데 맥아더 사령관은 ‘남한에 미군정이 실시되고 있으니 임정을 한국 정부로 승인할 수 없다’고 했어요. 임정에서 긴급국무회의를 열어 개인자격으로 환국할 것이냐를 놓고 찬반 격론을 벌였죠.”

―중경 임정에서 일본 패망 소식을 들으셨을 때는 기쁨이 대단하셨겠네요?

“오후 2시쯤 됐을까, 밖에서 폭죽소리가 나고 그래요. 내다보니 사람들로 인산인해였어요. 중경 주둔 미군들은 ‘빅토리(victory)’를 외치고 난리였죠. 우리는 일본 항복 소식을 듣고 반갑기보다는 처량하기 짝이 없었어요.

앞으로 우리 정부는 어떻게 될까, 걱정 때문이었죠. 동료가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해서 자주 가던 단골집에 갔어요. 삼육구반점(三六九飯店)이란 곳인데, 친하게 지내던 중국인 주인이 ‘축하한다. 너네 나라로 가면 너희들은 적어도 별은 달 것 아니냐’면서 음식을 공짜로 먹으라고 하더군요.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술잔만 기울이던 기억이 납니다.”

―임정요인 중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 등 먼저 15명이 환국하게 됐는데요.

“전날 밤에 ‘영감들’이 누가 먼저 가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았어요. 국무회의가 열렸는데 서로 먼저 가겠다고 고함소리도 들리고 그랬어요. 미군이 내준 C-47 프로펠러 두 개짜리 비행기를 타고 상해에서 출발했어요.

주석과 국무위원들은 비행기 앞쪽에 타고 나는 뒤쪽 왼쪽 창가에 앉았지요. 2시간쯤 지나자 해안선이 나타났어요.

인솔 책임자인 미군 대령이 ‘저기가 한반도다’라고 하더군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들 일어서서 애국가를 불렀어요. 서울에 도착하면 환영인파가 대단하리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더군요. 이럴 수가 있나, 참 서글펐어요.”

―환국 이후 김구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과는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셨는데요.

“선생은 이 박사를 ‘우남(雩南·이승만의 호) 형님’, ‘우남장(丈·어른)’이라고 부르셨어요. 이 박사가 한 살 위거든요. 늘 ‘초대(대통령)는 이 박사가 돼야 한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임정에서 내가 주석이 된 건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지’라고 하셨어요. 서울에선 한민당과 친일파들이 이 박사를 지지했지만 지방에서는 임정이 우리 정부가 돼야 한다고 환영하는 분위기였어요. 짧은 기간에 한독당 당원이 70만~80만명으로 늘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 박사가 틀어진 겁니다. 백범 선생은 이 박사에게 늘 깍듯했어요.”

한독당원 늘자 李박사가 멀리해

―1948년 4월 김구 선생이 남북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평양으로 가실 때 반대가 심했지요.

“400~500명 청년들이 경교장 뜰에 드러눕고 그랬죠. 이 박사 쪽 사람들도 있었지만 ‘평양에 가면 공산당에게 억류된다’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백범 선생은 베란다로 올라가서 청년들에게 ‘다 너희들을 위한 거다.

너희들에게 반쪽 국토를 넘겨줄 수는 없지 않으냐’고 호통을 치셨죠. 그래도 학생들은 막무가내였죠. 경교장 지하실 식당 옆에 보일러실이 있는데 뒷길로 나갈 수 있는 문이 있었어요. 그 쪽으로 빠져나가 38선을 넘었습니다.”

―남북 지도자 연석회의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나요.

“원래 김구 선생은 남의 김구와 김규식, 북의 김일성과 김두봉 이렇게 ‘4김’이 허심탄회하게 민족의 장래를 얘기해보자 해서 가신 겁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제 정당 사회단체 연석회의’라고 이름을 바꿔 여러 단체를 전부 집합시켜 놓았어요.

김두봉 집에서 한 차례, 김일성 공관에서 또 한 차례 네 사람이 만난 후 4월 30일 공동성명서를 냈어요. 첫째 양군(미군과 소련군) 철퇴, 둘째 내전을 일으키지 않는다, 셋째 전국 사회단체 지도자들이 모여 통일정부 수립 회담을 갖는다 등이었어요. 결국 다 실현되지 못했죠.”

―1949년 6월 26일 안두희가 어떻게 경교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까.

“전에도 몇 번 왔었기 때문에 안으로 안내를 했어요. 신의주 출신 박동엽 선생이라고 선생님과 가까운 사람이 안두희를 소개했었죠. 그날은 주일이었어요. 백범 선생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일엔 교회에 나가셨는데, 그날따라 차가 없어서 교회에 못 가셨습니다. 안두희가 들어가고 얼마 안 있어 총소리가 났어요.”

―김구 선생 암살은 이승만 대통령이 지시한 것입니까?

“그건 알 수 없죠. 증거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보호 아래 이뤄진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안두희는 사형 언도를 받았다가 6·25 때 풀려나서 소령으로 복직했어요. 이게 뭘 의미하는 겁니까? 이건 일개 국방장관의 명령으로 되는 게 아니에요.”/이한수기자 hs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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