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파월(Colin Powell) 미 국무장관은 14일 “미국은 대북 정책 재검토가 끝나면 미국이 선택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순서를 밟아 적절한 시기에 북한을 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의 이같은 발언은 리처드 아미티지(Richard Armitage)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주 방한해서 언급한 대북 대화 재개방침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그는 그러나 “우리가 대북정책 검토를 끝냄으로써 북한의 향후 행동 여부를 우리가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어떠한 대북 감시 및 검증체제가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뒤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말해, 북한과의 대화에서 검증을 강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또 “부시 대통령은 지난 3월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대북 화해노력과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우리의 대북 포용 방침을 전했다”면서 “그러나 당시는 새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재검토 중이었기 때문에 대화를 재개할 태세를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성명을 통해 북한과 수교키로 결정했다고 발표한 데 대해 “그것은 EU가 선택해야 할 사안이다”라며 “비판적으로 할 말은 없다”고 말했다.

미국의 외교사령탑인 콜린 파월(Colin Powell) 국무장관이 대북 대화 재개 방침을 구체적으로 확인함으로써, 다음달 열릴 가능성이 큰 미·북 대화의 형식과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파월 장관은 우선, 지금까지는 대북정책을 재검토 중이었기 때문에 북한과 대화를 할 태세가 돼 있지 않았을 뿐, 부시 행정부의 방침은 당초부터 대북 포용 정책을 지향하고 있다는 원칙론을 폈다. 그는 지난 3월 한·미 정상회담 당시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말했다가 하루 뒤 이 발언을 거둬들인 배경을 묻는 질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말했듯이 그때 내 스키가 조금 빨리 나갔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날 대북 대화를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끌고 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가 한 “미국이 선택한 시간과 장소에서 북한과 대화를 재개할 것”이라는 발언은 외교적인 언사를 넘어선 거의 일방적인 의지의 표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또 “어떠한 대북 감시 및 검증체제가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뒤 북한과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말해, 지금까지 검증을 강조해온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렇게 본다면 파월은 북한과의 대화는 재개하되 미국의 입장 수용을 북한에 강력히 요구하는 방식의 대화를 이끌어 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힌 셈이다.

파월은 하지만 어떤 수준에서 어떤 대화를 해나가겠다는 점은 설명하지 않았다. 클린턴 전 행정부는 북한과 핵·미사일·테러리스트·미군 유해반환협상 등을 분야별로 진행시켰으며 때로는 포괄적인 회담을 추진하기도 했다.

만일 부시 행정부가 분야별 회담을 선호한다면 미사일 방어(MD)를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미사일 회담을 테이블에 먼저 올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북한과의 사전 조율과정에서 미·북관계의 전반적인 진전을 모색하기 위한 포괄회담 쪽으로 방향을 잡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북 간의 고위급 첫 상견례는 17~18일 하노이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제8차 고위관리회의(SOM)에서 제임스 켈리(James Kelly)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와 북한의 이용호 외무성 신뢰구축담당 참사 간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향후 미·북관계는 부시 행정부가 대북 정책 재검토 과정에서 어떤 협상 보따리를 마련하느냐, 그리고 북한이 이를 어느정도 수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시 행정부가 만일 클린턴 전 행정부보다 훨씬 강경한 핵과 미사일 검증 절차를 요구한다면 미·북회담은 지지부진할 수도 있다. 이제 공은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워싱턴=주용중 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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