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1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남북관계는 소강상태에 들어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는 어째서 남북관계가 더 빨리, 더 많이 진전되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둘째는 지금의 ‘소강상태’가 일시적인 것이냐, 아니면 앞으로의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냐는 의문이다.

북한이 근래에 와서 남북한 관계에 소극적인 이유가 미국의 부시 행정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도 자신이 남한을 방문하지 못하는 이유가 미국의 대북한 입장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금의 북한의 태도변화는 이미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이다. 즉, 만약 미국과의 관계가 북한이 기대했던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더라도 지금쯤 남북관계는 ‘소강상태’를 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상회담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여러 가지 이득을 취해 왔다. 남한으로부터 직·간접적인 경제 지원을 받았다. 또 남한의 협조와 성원을 받아 서구 여러 나라들과 수교도 하고, 아세안지역포럼(ARF)과 같은 국제기구에도 가입했다. 그러나 이제는 남한 내부의 경제적·정치적 사정이 달라져서 북한에 대한 너그러운 지원이 어렵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비료나 식량 지원은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없이도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으나, 북한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전력 등 전략적인 물자는 답방을 하더라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북한은 또 한국의 협조를 받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기대했었다.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로부터 지원을 받으려면 미국의 협조가 불가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취임 이후 그러한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체제의 부담을 무릅쓰고 남한과의 관계 확대를 추구할 인센티브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남북한 관계에 있어서 다음의 세 가지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남북간에 긴장이 해소되고 교류 협력이 확대되어 평화적 관계가 정착되는 시나리오이다. 둘째로 지금과 같은 ‘소강상태’가 상당기간 계속될 가능성이다. 셋째, 남북 간 화해 협력이 이뤄지지 못하고 반목과 불신의 상태로 복귀할 가능성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둘째 것, 즉 남북관계가 크게 좋아지지도, 그렇다고 크게 나빠지지도 않으면서 계속 소강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하겠다.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호전시킬 동기도 없는 한편, 그나마 어느 정도의 관계는 지속시켜야 하는 필요성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미사일 방어(MD) 체계와 관련하여 한국을 방문한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은 미국이 조만간 대북한 정책 검토를 끝내고 북한과의 대화를 재개할 것을 시사했다. 그러나 미·북 대화 재개가 곧 남북관계의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시 행정부 때문에 남북관계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미국의 MD계획에 반발하여 남북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는 이야기다. 도리어 미국과의 관계가 좋지 않을수록 북한은 남한과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미·북 대화가 시작되더라도 당장 가시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미사일 협상에 있어 부시 행정부는 특히 검증 문제를 중시할 것이고, 미사일 수출중지에 대한 보상 요구는 강경히 일축할 것이므로, 양자 간 합의의 가능성도 밝은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이미 한국의 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했다. 북한에 식량지원도 재개했고 KEDO사업도 이행할 것임을 천명했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 미국을 남북대화 지연의 구실로 삼을 명분이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남한으로서는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재개한다고 해도 그것이 남북한 화해협력의 돌파구가 열리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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