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향리 미군사격장 폭탄투하 문제와 불평등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를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속에, 최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는 나로 하여금 1980년대에 친미론과 반미론의 와중에서 주한미군 문제는 용미론(용미론)의 시각에서 조심스럽게 손익계산서를 작성한 후, 이에 기반하여 주한미군의 활용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친미론과 반미론 쌍방으로부터 협공을 받았던 시절을 다시 한번 회상하게 만든다.

세월이 상당히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주한미군 문제 논의의 수준과 방향은 크게 나아지고 있지 않다. 반미론이 주한미군의 부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면, 친미론은 주한미군의 긍정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향리 문제와 주둔군지위협정 개정 문제의 신속한 해결과 함께, 보다 차갑고 세련된 안목으로 21세기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위한 주한미군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손익계산서에 기반하여 우리는 주한미군 문제를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주한미군 손익계산서는 국내, 남·북한, 그리고 동북아의 차원으로 나누어 작성해야 한다. 우선 주한미군이 국내에 미치고 있는 손익을 따져 보자면 매향리와 같은 피해, 주둔군 지위협정의 불평등, 주한미군 유지비 분담 등을 쉽게 꼽을 수 있다. 그러나 탈냉전 평화체제의 구축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가 이루어지는 경우에, 역설적으로 군비축소가 아니라 군비경쟁을 경제적으로 감당해야 할 위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이 남·북한관계와 동북아관계에 미치는 손해와 이익에 대한 21세기적 평가를 얼마나 현실적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남·북한 관계개선의 걸림돌인가, 아니면 징검다리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자명한 것이 아니다.

특히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은 남·북한 관계개선의 첫 걸음을 주한미군 철수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명분론을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보자면 주한미군이 남북대화의 중요한 난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주한미군의 지난 반 세기 역사 속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군(감군)이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위기와 전쟁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1949년 주한미군의 철수와 함께 우리는 한국전쟁을 맞이하였으며, 1970년의 감군과 함께 남·북한은 치열한 군비경쟁의 위기를 겪어야 했다. 탈냉전의 평화체제가 아직 마련되지 못한 한반도에서 설혹 남·북한이 상호 공격적이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주한미군의 부재는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주한미군이 한반도 통일의 억지세력인가, 아니면 전쟁과 위기의 억지세력인가 하는 손익계산서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주한미군이 동북아의 평화에 기여하는가, 아니면 동북아의 위기를 초래하는가 하는 것이다.

21세기의 유럽과는 달리 19세기 이래 뒤늦게 근대 국제질서를 받아들인 동북아 국가들은 21세기에도 일국 중심주의의 근대적 갈등을 쉽사리 졸업하기 어렵다. 특히 현재의 미·일 대(대) 중국의 동북아질서가 중·일 중심으로 바뀐다면 상대적 불안정은 더 증가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아·태지역의 군사적 기반이 이 지역에서 상당한 부작용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있는 동북아’가 ‘미국 없는 동북아’보다 상대적으로 동북아의 안정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

주한미군의 이러한 복합성을 고려한다면 주한미군의 국내, 남·북한, 동북아 차원의 부작용을 최대한 줄이면서 주한미군을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징검다리로 활용할 때, 주한미군 문제에 비로소 해결의 서광이 비치게 될 것이다.

/ 하 영 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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