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ㆍ30)은 10여년 전부터 사실상 ‘후계자’ 수업에 들어가 당-정-군의 업무를 폭넓게 섭렵해 온 것으로 확인된다.

김정남은 80년대 말 국가안전보위부가 수행하고 있던 컴퓨터 해킹 등을 통한 각종 해외정보 수집 부문을 맡았다. 그러다가 이 같은 업무를 첨단 시설을 갖춰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판단이 든 그는 동시에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부문의 육성이 필요하다고 보고 김정일 위원장에게 건의, 지난 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를 설립했다.

조선컴퓨터센터는 국가안전보위부의 해외정보수집 기능과 함께 정보기술(IT) 정책을 총괄하며, 과학원ㆍ평양정보센터(PIC)ㆍ약전연구소ㆍ김일성종합대 및 김책공대 컴퓨터프로그램개발센터 등을 통제하는 IT 부문 최고 기관이다. 조선컴퓨터센터의 최고책임자인 김정남을 주변에선 존칭의 뜻을 담아 ‘컴퓨터위원회 위원장’으로 부르며, 조선컴퓨터위원회는 곧 조선컴퓨터센터를 지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IT 등 경제분야에 주력하게 된 데는 김일성 주석의 배려가 작용한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일성은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김정일이 경제분야의 전문성이 부족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정남이는 경제를 배워야 한다. 그래야 민족을 이끌어나갈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1997년 당중앙위원회 경공업부장을 맡고 있는 고모 김경희로부터 경제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만 24세 되던 지난 95년 생일(71년 5월10일생)을 맞아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인민군 대장 계급장과 군복을 받았다. 김 위원장이 그에게 대장 직위를 준 데는 김 주석이 김정남을 ‘장군감’이라고 추켜세운 것이 큰 영향을 끼쳤다.

김일성은 지난 90년대 초 김정일 부자와 함께 백두산에 갔다가 김정남이 말 타는 모습을 보고 ‘우리 집안에 또 하나의 장군이 태어났다’면서 좋아했다는 것이다. 김정남이 ‘대장 동지’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인민군 대장 계급을 받고부터다.

김정남은 대장 직위를 바탕으로 90년대 후반 들어 인민군 보위사령부(현 인민무력부 보위국)에도 관여하고 있으며, 국가안전보위부도 사실상 총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은 평소 자주 인민군 보위사령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청사를 드나들면서 이들 기관의 핵심 간부들에게 상당한 금액의 ‘하사금’을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은 지난 94년 말~95년 초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지도원으로서 당 업무 파악에도 나섰다. 얼마 뒤 조직지도부의 직책까지 겸했고 책임지도원ㆍ과장 등을 거쳐 현재는 부부장 직책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정남은 95년 초부터 조직지도부 간부과 부과장의 ‘수행 보좌’를 받으며 당ㆍ정의 간부 인사에 개입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이 인민군 보위사령부와 국가안전보위부 청사엔 자주 드나들고 있으나 평양시 중구역 창광거리에 위치한 중앙당 조직지도부 청사나 내각 청사 등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근접 경호는 호위총국 요원 2명이 맡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김정남은 90년대 후반 들어 김정일 위원장의 현지지도와 군부대 시찰에 수행하면서 ‘현장 수업’도 해오고 있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의 현지지도 등을 기록영화로 제작할 때 김정남의 모습은 기술적으로 빼고 있지만 어쩌다 포함시키는 ‘실수’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남이 후계자로서 힘을 갖기 시작하면서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들도 그에게 깎듯하게 대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조명록 인민군 총정치국장,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 현철해 총정치국 부총국장,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등이 꼽힌다.

김정남은 만 8살 되던 1979년 모스크바 국제학교로 유학간 뒤, 스위스 제네바 국제학교를 졸업하고 제네바종합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다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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