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철저한 주민 감시체제를 유지하는 데는 국가안전보위부의 수많은 ‘끄나풀’들이 동원된다. 이들이 누구인지는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일지라도 알 수가 없다. 나도 그 노릇을 해 본적이 있다.

평양에서 대학에 다닐 때였다. 어느 날 등교길에 나는 보위부로 끌려갔다. 친구에게 미화 500달러를 빌려준 일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죄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반정부조직에 연루돼 있었다. 내가 빌려준 돈이 반정부 모의에 사용됐다는 것이다. 그들은 각 대학에 조직원들을 만들고 조직강령도 만들었다고 한다.

보위부에서는 친구와의 관계를 심문했다. 1주일간의 조사 끝에 나는 무죄인 것이 판명돼 풀려났다. 아버지의 배경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지 얼마 안돼 학교담당 보위원이 나를 불렀다. 과거의 사건을 자세하게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러면서 당에 협조해 일을 함께 하자고 했다. 지은 죄가 있어 거절할 수가 없는데다 어떤 보복이 돌아올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학교 주변에 퍼져나가고 있는 남한 노래의 출처를 캐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만 남한테이프 원본이 10개나 되는데. 그때부터 나는 정기적으로 보위원과 만남을 가지게 됐다. 누가 남한 노래 테이프를 갖고 있고 누가 언제 어디서 남한 노래를 불렀는지에 관해 주로 보고해야 했다. 그러면서 나와 같은 임무를 가진 학생들이 한 둘이 아닌 것을 알게 됐다.

하루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파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당중앙의 고위 간부인 한 친구가 술이 취해 “김정일은 죽어야 해”라고 내뱉았다. 나중에 보니 그 말은 고스란히 보위원의 수첩에 적혀 있었고 그 자리에 누가 있었는지도 적혀 있었다. 물론 내 이름도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친구들은 정말 친한 친구들이었는데 나 말고 누가 또 이런 짓을 할까? 정말 ‘낮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 그대로였다.

학교에는 교원담당, 학생담당 보위원이 있다. 보위원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피라미드 전법을 쓴다고 했다. 누가 나를 감시하면 감시자를 누군가가 또 감시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어 놓고 필요한 때에는 서로 싸우게 한다. 그러면 기대하지 않은 정보가 마구 쏟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리 학교 담당보위원은 일제담배 ‘마일드세븐’만 피웠다. 대학 학장일지라도 그에게는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다. 나도 가끔 보위원에게 담배를 상납했다. 그러면서 조금 가까워져 편한 이야기도 자주 하게 됐다. 그에게 알아낸 또 한가지는 일반 ‘끄나풀’의 조건은 아주 착실한 사람과 반대로 불량하거나 성분이 나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알고 보니 나는 문제가 많은 쪽이었다. 매일 친구들과 남한노래 부르고 불량비디오를 봤으니 말이다. 웬만한 집안 같으면 벌써 수용소로 갔겠지만 나는 ‘끄나풀’로 활용된 것이다.

나는 보위부 ‘끄나풀’이니까 마음이 좀 느긋해져서 홍콩 미국 일본 등의 비디오를 봤다. 그런데 비디오를 빌려갔던 친구가 인민보안성(경찰)에 체포돼 내 이름을 부는 통에 보안성으로 끌려갔다. 보위원이 나를 도와주겠거니 생각했지만 오히려 나를 더 죽이려 했던 것 같다. 죽도록 매를 맞고 아버지가 재산을 털다시피 뇌물을 써서 나를 구출해 주었다. 나는 대학에서 퇴학 당했다. 더 이상 북한에서 산다는 것이 무의미해져 탈출했다.

/이성호(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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