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예작품에 남녀간의 애정문제를 다룬 작품은 많다. 그러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상황을 삼각관계로 설정한 작품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삼각관계란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적 문화잔재로서 노동자 계급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김일성 주석의 "교시"에 기인한다.

일례로 김 주석은 67년 1월 예술영화 <내가 찾은 길> 첫 필름을 보고 영화예술인들과 가진 담화에서 이 영화는 연출도 잘 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으며 흐름도 잘 짜였다고 치하했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의 사랑관계를 삼각련애로 만들어 놓은 것은 잘못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일제 때 나온 연애소설 <장한몽>(속칭 이수일과 심순애)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혁명가들은 아무 사람이나 망탕(되는대로) 사랑하지 않는다. 혁명가들은 투쟁 속에서 사상의지적으로 결합된 사람만을 사랑한다"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실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눅거리사랑(값싼사랑)이며 부르죠아 박애사랑에 기초한 사랑"이라고 혹평했다.

이 밖에도 그는 영화가 노동자인 주인공을 주먹이 세고 힘께나 쓰는 왈패로 묘사했고, 그가 사귀는 노동자들도 왈패가 아니면 주정뱅이로 그리고 있다며 신랄히 비판했다.

이 영화는 당시 문예계를 대표하는 작가동맹위원장 천세봉의 소설 <안개흐르는 새 언덕>을 각색해 영상으로 옮긴 것으로 남녀 주인공은 당대 영화계를 주름잡던 엄길선과 성혜림이 맡았다. 현재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총장으로 있는 엄길선은 북한 1원짜리 지폐에 등장할 정도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 인물이며, 성혜림 역시 우인희 김현숙과 함께 60년대 은막의 트로이카로 꼽히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최고의 여배우였다.

김 주석이 겨냥한 것은 영화 자체가 아니라 원작인 천세봉의 소설로 원작에 결함이 있다보니 영화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소설을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는 반드시 심사를 거쳐야 한다는 주문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일이 있은 후 문예작품 창작에서는 반드시 사회현상의 본질적인 측면만을 형상해야 한다는 이른바 "전형화의 원칙"이 철칙처럼 자리잡게 되었다. 문예작품의 주인공은 반드시 "주체형 공산주의 혁명가"·"자주적 인간의 전형"으로 묘사해야 하고, 남녀간의 애정문제도 사상이 중심주제로 다뤄져야 하며 삼각관계는 혁명의 대상인 적대적 인물에 한해서나 허용되는 금기처럼 돼버렸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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