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성은 입지전적인 화가이다. 그는 외롭게 자신의 화업을 일구어 왔다. 늘 혼자였다. 때문에 그의 작업에는 독창성의 내음이 짙게 묻어 있다. 물론 그 바탕에는 가시밭길의 고통도 깔려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보기 드물게 우리시대의 정통성을 담보하고 있는 화가이다. 무엇보다 수묵화의 덕목을 긍지로 여기고 있다. 게다가 문인정신의 조형화에 남다른 일가견을 지니고 있다. 그는 전통의 지필묵으로 독자성을 획득하고 있다. 특히 현대판 겸재(겸재)가 되어 진경정신의 구현으로 조국의 산하를 화면에 담고 있다.

‘묘향에서 인왕까지’. 오랜만에 만나는 박대성 개인전(18일에서 6월 11일까지 가나아트센터, 02-720-1020)의 전시명칭이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독특한 필치로 재현한다. 발길이 닿은 곳만 해도 북한지역의 묘향산, 금강산, 정방산 등을 비롯, 작가가 살고 있는 북한산의 인왕까지 폭이 넓다.

이들 산하는 때로는 장중하게, 때로는 경쾌하게, 혹은 세밀하게, 혹은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다. 특히 이번 전시작품들은 군더더기의 장식적인 부분들이 과감하게 제거되었다. 예전의 화사한 색깔이라든가 뿌옇게 처리된 안개부분 등이 생략되어 있다. 꾸밈보다는 알맹이로 우리 산수의 정통성을 갈파하겠다는 조형의지를 느끼게 한다.

박대성의 화법은 무엇보다 견고한 화면 구성력과 생기 넘치는 필력에서 찾게 된다. 그의 선(선)은 살아 있다. 한마디로 기(기)가 넘친다. 수묵화의 생명은 선에서 찾게 된다. 이같은 필력으로 그는 대상의 정신성을 화면에 구현해 낸다.

예전 같으면 과도한 친절로 설명하는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절제의 미학으로 간필(간필)을 활용한다. 과감한 생략은 치밀한 사실력의 바탕에서 힘이 생긴다. 이제 그의 붓은 자유자재를 얻었는가 보다. 일부러 꾸미려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격식을 부수는 데에만 매달리지도 않는다. 붓의 자유자재를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 아닐 수 없다. 거기에서 우리들은 문인정신 그림의 진로를 예견할 수 있게 된다.

박대성 개인전에서 우리들은 잃어져 가는 수묵 문인화의 신경지를 확인하게 된다. 전통의 지필묵으로 일구어낸 화면에서 우리 산하의 진면목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다. 작가는 이번에 금강산 만물상을 먹으로 표현하는 데 특유의 장기를 자랑했다. 일찍이 겸재 정선도 그리지 못했던 만물상을 박대성은 먹 하나로 그 골기(골기)를 집약시켰다.

금강의 골기가 이번 전시장에 넘쳐 흐를 것이다. 그것은 지필묵의 승리이기도 하다.

/윤범모·미술평론가·경원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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