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승준 애틀러스그룹 대표/미 MIT 정치경제학 박사

제3부 – IT와 남북협력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우리는 손뼉을 치기 위하여 손을 들고 있는데 북은 의사가 과연 있는가? 최근에 한국의 기가링크라는 회사가 북한에 초고속통신망 시범구축에 합의하였다거나 하나비즈닷컴의 사장이 북한에서 IT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으며 한국 IT업계의 사장들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 등은 북한이 손뼉을 칠 의사가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러한 개별의 사건들을 남북협력 나아가서 남북한 공동체의 형성이라는 큰 인식의 지도에서 어디에 놓고 해석을 해야 할 것인가? 북한에서 IT사회가 형성되고 이를 통하여 한반도에서의 “디지털 공동체”가 이루어 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도전이 있다.

첫째, 기술적인 도전이다. 북한에서 IT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우선 인프라스트럭처가 갖추어져야 한다. 즉 인터넷이 가능할 정도의 통신망(기간망 및 가입자망)이 현대화되고 인터넷에 맞는 통신기술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아울러 인터넷을 통해 컨텐츠를 공급하고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장비, 다시 말해 라우터, 서버 그리고 PC 등이 필요하며 각종 소프트웨어가 공급되어야 한다.

북한 당국은 반드시 한국, 유럽, 중국 등 동원 가능한 우호세력을 이용하여 북한의 IT환경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의 IT업체의 대표들을 초빙하여 “국정원이나 통일부가 문제삼지 못하게끔 모든 것을 도와줄테니 말만 하라”고 했다는 것은 단적인 예이다.

실제로 김위원장은 IT경제의 현대화를 위하여 필요한 통신망의 현대화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디지털화와 관련한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지난 1996년 10월 그는 “통신부문에서 광섬유통신케이블의 건설을 추진하여 통신회선의 다중화를 실현할 수 있는 사업을 추진해, 전국적인 디지털종합통신체계를 수립해야 한다”고 지시하였다. 그가 “디지털종합통신체계”라는 말을 썼다는 사실은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나 이러한 IT인프라가 갖추어진다 하더라도 이는 오직 북한의 집권층이 허용하는 사회의 일부에 대한 IT화이다. 북한이 전세계가 이용하고 있는 보편적인 인터넷시스템에 편입되기 위해서는 매크로 레벨에서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한다. 즉 북한의 지도부가 북한주민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자유로이 통신하고 거래할 수 있는 상태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오랜 기간 불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우리는 북한집권층의 현재의 폐쇄성에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IT기술은 마치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좋은 선례가 된다. 중국이 현재 운용하고 있는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시발점은 1992년 등소평의 “남순강화”로 볼 수 있다. 이해 봄 등소평은 남방을 시찰하면서 “계획과 시장”이 모두 경제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설파하며 시장경제 도입의 문을 열었다. 이로부터 불과 2년 후인 1994년 1월에는 과학기술분야를 통괄하는 CSTNET이라는 거대한 폐쇄적 인터넷망이 형성되어 그 후 차례차례 기능별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2000말 현재 중국에는 약 2000만 명이 인터넷에 가입하여 약 1만5000개의 사이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인터넷접속 서비스를 제공하는 ISP가 현재 수 백개에 이르고 컨텐츠를 제공하는 ICP는 1000개를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정부기관만이 사용하던 폐쇄망이 도입된지 불과 6년만의 일이다.

북한에 있어 컴퓨터사용 및 프로그램의 개발에 큰 전환기가 된 것이 1998년 2월 8일의 전국컴퓨터 프로그램 경연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대회를 시찰한 김 위원장은 “과학의 시대적 요구에 합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며 경연의 정기개최, 기술교류 및 경험교환의 활성화, 소년부터 컴퓨터교육을 실시할 것 등을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는 발전도상에 있는 자본주의국가의 지도자가 할 수 있는 발언과 내용상 큰 차이가 나는 것이 없다.

아무튼 이 시찰이 북한의 컴퓨터사용 및 프로그램개발에 관한 한 “남순강화”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1월 중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방문은 “서순강화”의 측면이 강하다. 이 중국나들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의 군부나 당이 아니라 상해의 컴퓨터공장, 증권거래소 등을 돌아 보았다.

일본에 있는 조총련계 대학인 조선대학의 이공학부 하민일 교수는 “김정일 총서기(총비서)는 2002년까지 조선어 OS의 개발을 노리는 등, 국가의 존망을 걸고 IT에 몰두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반도에서의 디지털공동체 출현가능성이라는 명제가 환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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