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나리타 공항에 나타난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은 한 나라 최고통치권자의 후계자라기보다는 ‘이상한 나라’에서 온 ‘한량(閑良)’의 모습이었다.

조끼 차림에 롤렉스 시계를 차고 손가락에 묵직한 금반지를 몇 개씩 낀 것이나, 1만엔권과 100달러 지폐로 두툼한 지갑을 갖고 있다는 것이 그러하다. 불쾌하다는 듯이 보도진을 노려보는 눈초리도 영락없이 그런 모습이다.

▶김정남 일행 중 검은 선글라스를 쓴 여인은 베벌리 힐스의 로데오가(街)에서 금방 나온 것 같이 보일 정도다. 이들의 트렁크엔 100달러 지폐가 그득했다고 하니 우리 돈으로 몇 억원을 용돈으로 갖고 다닌 모양이다. 일행이 갖고 있던 가방도 프랑스제 최고급 루이 비통이었다는데, 그렇다면 이들이 걸친 옷가지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디자이너의 최고급 명품임이 틀림없다.

▶김정일 위원장은 세 자녀를 두었는데 지금은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첫째가 바로 김정남이다. 러시아, 스위스, 일본에서 공부했고 외국에서 다년간 산 적이 있는 김정남은 인터넷 팬이라 한다. 그는 정보기관과 컴퓨터위원회에서 일하면서 후계자 수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을 뿐 베일에 가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국제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한 셈이다.

▶김정남의 얼굴, 체구, 걸음걸이는 김일성과 김정일을 많이 닮았다. 노동자와 농민의 천국을 세운다던 김일성이었지만 그의 통치 50년 만에 북한은 굶어죽은 시체가 즐비한 생지옥으로 전락했다. 그런 북한이 버티는 것은 국제사회가 건네준 식량과 구호물자 덕분이다. 이런저런 명분으로 우리가 지원한 구호물자도 적지 않다. 금강산 관광대금으로 현대가 북한에 건넨 돈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그 많은 돈이 북한에 들어가도 북한주민들 삶이 나아진 게 없어 의아해 했는데, 이제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김정남 같은 ‘한량’들이 흥청망청 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그것이다. 혹시 내가 낸 적십자회비, 금강산 관광비용이 그의 지갑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당국자들은 이 사건으로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출하는 데 장애가 될까 걱정이란다. ‘이상한 나라’를 애써 감싸는 우리 정부야말로 정말 ‘이상한 정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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