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의 일본 체류 67시간은 코믹 풍의 미스테리극(劇)을 한 편을 본 것 같았다.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고, 의문투성이였으나 일이 돌아가는 장면은 희극적 분위기가 강했다.

김정남이 처음으로 서방 매스컴 앞에 베일을 벗은 순간도 그랬다. 4일 강제 추방되는 장면을 찍기 위해 공항에 진을 친 내·외신 기자들은, ‘제왕(帝王)수업’을 받는다는 정권 후계자의 위엄있는 출현을 상상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김정남은 며칠간 면도를 하지 못한 듯 수염이 덥수룩한 초췌한 얼굴로 나타났다. 매스컴 노출을 예상하지 못한듯 바지는 구겨져 있었다. 딱 붙는 티셔츠는 비만한 몸집을 그대로 드러냈다. 11개월 전 그의 부친이 극적 연출로 화려하게 데뷔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손목엔 롤렉스 시계, 그리고 두툼한 금반지가 양손에 한 개씩 끼어져 있었다. 일본 TV는 셔츠 사이로 언뜻 보이는 금목걸이까지 잡아내 확대해 보여주었다. 방탕한 재벌2세를 연상케 하는 그의 영상은 일본 전역에 반복해 방영됐다.

일본 열도를 한번 더 놀라게 한 것은 북한 로열 패밀리의 호사스러움이었다. 그의 여행 트렁크에 100달러 지폐가 수북했고, 지갑엔 달러·엔 고액권이 3㎝ 두께로 채워져 있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지도층이 이처럼 부유한 나라가 식량을 구걸한다는 것은 블랙 코미디 그 자체라고 일본인들은 말한다. 게다가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불법입국의 목적은 고작 디즈니랜드 구경이었다. 디즈니랜드는 미국식 엔터테인먼트의 상징이고 북한은 ‘주체의 국가’ 아닌가.

‘김정남 코미디’의 마지막은 그가 진짜 김정남인지 단정할수 없다고 우기는 일본 정부가 장식했다. 서둘러 그를 추방한 뒤 법무성은 “외국인 사건 조사엔 인력이 많이 들고 통역 확보가 힘들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朴正薰·東京특파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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