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성 중앙대교수·국제정치

올해 5월의 첫 주에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난 국제적 사건들은 우리의 향후 통일외교안보정책의 기본방향 설정에 필요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게 만드는, 가히 역사적인 것들이다.부시 미국대통령에 의한 미사일방어계획(MD) 추진의 공식발표는 우리에게 ‘동맹 우선’ 노선과 ‘민족자주 우선’ 노선 간의 분명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다.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이은 고이즈미 내각의 출범에 따른 보수우경화 경향은 앞으로 우리가 일본을 ‘우호동맹적 이웃’으로 대할 것인가, ‘잠재적 위협세력’으로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선택을 준비하게 만든다.

김정남 사건과 낙후된 체제

한편 김정일 위원장의 미사일발사 2003년까지 유예의사 표명과 미국의 대북정책검토 이후에 서울을 방문할 계획이라는 천명은 북녘하늘만 바라보면서 일희일비해온 우리 정부의 ‘미·북관계 선행’과 ‘남북관계 개선 우선’ 사이에서의 시련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굵직한 결정을 강요하는 일련의 변화를 비웃기나 하는 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은 위조여권을 갖고 일본에 불법입국하려다가 체포, 추방되었다.이제 다시 세상은 북한이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이상한 나라인가’라는 논쟁을 시작한다.우리의 모든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설정 과정에 북한 요소는 핵심적인 축으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김정남 추방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아 넘길 수가 없다.

북한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은 확고한 것 같다.역사적인 정상회담에 응했고 6·15선언을 낳게 했으니 합리적인 대화의 상대요 통일로 가는 도정의 정상적인 파트너일 수 있다는 것이다.국민 일반에서도 언제부터인가 북한의 체제성격을 탓하면서 인권을 거론하거나 공산주의 전략전술 유지를 근거로 북한지도부를 불신하면 마치 반민족 혹은 반시대적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햇볕 정책' 한계 다다른 듯

그러나 김정남 사건은 현재의 북한이 국제적 기준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시 일깨워 준다.김정남은 권력세습체제 국가 수뇌의 장남에다 이미 지난 1월에는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 때 수행했다는 소문이 있고, 정보기술정책총괄 위원장이니,평양의 ‘작은 장군’으로 행세하느니 하여, 김정일의 후계자로 관찰되어온 터이다.머지 않아 김정남의 행태가 북측에 의해 어떻게 각색이 될지 모르나, 북한체제의 구조적인 모순과 후진성에 대한 평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 현 정부의 경우 애초부터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인식했던 것 같지는 않다.다만 남북정상회담 이후에 북한체제와 북한 지도부는 일거에 ‘믿음의 상대’요, ‘정상적인 체제’로 승격된 것 같다 그래서 한때 ‘북한의 전략전술의 우수성 때문’이라고 비꼬는 말이 등장했던 것이다.그러나 북한이 계속적인 절대빈곤하에서 시민적 자유와 인권을 용납하지 않는 병영체제를 유지하면서 적화통일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정상국가라 할 수가 있는가.

금주 내로 미국은 동맹인 우리를 미사일방어체계 추진계획에 줄을 세우려는 압력을 개시한다.만일 북한이 진정 믿음의 상대일 수만 있다면 우리는 ‘동맹 우선’보다 ‘민족 자주’ 노선에 입각한 대응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북한이 ‘정상’이 아닌데 어떻게 동맹체제로부터 얻어지는 안보이익과 경제적 실리를 불확실성의 미래를 위해 포기할 수 있겠는가.

북한의 체제적 특징에 따른 전략,남북한 관계,그리고 미국의 대 한반도정책,이 3자 간에 내재되어 있는 엄청난 모순 때문에 이제 햇볕 정책의 효용성은 한계를 맞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앞으로의 대북정책 방향은 북한의 체제가 시급히 정상화 되도록 하는 데로 모아져야 할 것 같다. 북한 지도부가 체제안보의 내외적 위협상황을 옳게 인지하여 진정한 체제 정상화의 길로 들어설 때라야만 비로소 민족의 미래를 향한 정상적 파트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유화책을 통한 설득노력보다 북측의 ‘전술적 속임수’를 용인하지 않는 우리의 원칙있는 입장의 개진과 단호함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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