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金正男)을 체포 4일만인 지난 4일 중국으로 추방,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킨 데 대해 일본 내에서 강한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 북한 인권단체 등은 “좀더 잡아두고 철저한 조사를 벌여야 했음에도 불구, 조기 송환함으로써 ‘외교카드’를 스스로 포기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제1야당인 민주당 간 나오토(菅直人) 간사장은 5일 강연에서 “어떤 판단에 따라 국외 추방했는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일본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며 정권 공격에 나설 방침임을 밝혔다. 이에따라 7일 재개되는 일본 국회는 이 문제가 여야 공방의 초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여야 5개 정당 국회의원 10명도 4일 긴급 성명을 발표, “일본정부는 주권국가로서의 역할과 임무를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불법입국의 동기와 배후관계 등을 철저히 규명하는 것이 주권국가의 당연한 책무”라고 주장했다.

일본 입국관리법엔 불법입국자를 최대 60일간 신병 구속할 수 있게 돼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북한에 ‘빚’을 지워 일·북한 관계개선으로 유도한다는 계산 아래, 김정남이 맞는지 여부의 공식확인조차 피한 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사건을 종결지었다.
이에 대해 보수 성향의 언론과 지식인들은 “북한이 과연 고마움을 느낄까”라고 의문시하며 ‘안이한 대북한 인식’을 공격하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사설에서 “사건이 의문 속에 빠지지 않도록 진상을 설명하는 게 법무성의 책무”라며 “북한은 아직도 KAL기 폭파사건이나 공작선 침투사건 등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 않은가”라고 지적했다. 산케이(産經)신문도 “무사안일주의에 따른 결착”라고 비판하며 “일본인 납치자 가족들이 그의 송환에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반면 아사히(朝日)신문은 조기결착을 “현명한 대응”이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 대조를 이뤘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일·북 관계 정상화를 바라는 일본의 자세를 북한은 받아들이라”는 논조를 폈다. 도쿄(東京)신문은 “한국의 ‘햇볕정책’을 배려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가족과 관련 단체들은 “김정남을 출국시키지 말고 피랍자 구출을 위한 교섭카드로 썼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인권탄압을 감시해온 ‘RENK(구하라 북한민중/긴급행동네트워크) ‘는 “김정남은 인권탄압에 책임있는 입장의 인물인만큼 엄중히 조사했어야 했다”고 외무성에 항의했다.

우파 성향의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는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입국하려 한 것은 북한이 일본을 가볍게 보고 있음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한반도 전문의 대학교수나 오카자키 히사히코(岡崎久彦) 전 태국대사 등은 “일본정부 대응이 마이너스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이해를 표시했다.

일본 법무성 당국자는 4일 김정남 출국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잇단 질문에 “말할수 없다” “양해해달라”는 말을 연발,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일본 정부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초 경찰과 공안당국은 김정남을 형사고발할 것을 주장했으나 외무성이 강력히 반대, 결국 고이즈미 총리가 ‘조기결착’의 결단을 내렸다고 일본언론은 전했다./東京=朴正薰특파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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