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IT 발전 전략의 '혁명 기지'로 삼고 있는 평양 소재 조선컴퓨터센터(KCC) 전경.

노승준/애틀러스그룹 대표이사ㆍ미 MIT대 정치경제학 박사

최근 남북 경협의 중심축이 ‘굴뚝’으로 상징되는 일반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로 이행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초 비트컴퓨터 대표가 북한에서 IT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한데 이어 3월엔 기가링크가 평양정보센터와 김일성대 등에 초고속통신망을 시범 구축했고 하나비즈닷컴은 4월 말에 북한과 합작으로 중국 단둥에 소프트웨어개발센터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 같은 이행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IT를 개발해 단숨에 생산력을 증대시켜보겠다는 ‘IT 국가발전전략’을 채택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런 ‘디지털 전략’은 그가 지난 95년 평양프로그램센터에 보낸 감사문에서 엿보인다. 김 위원장은 “이미 거둔 성과와 경험을 토대로 인민경제의 컴퓨터화를 강력히 추진하여 하루라도 빨리 선진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김 위원장의 발언들과 함께 북한 당국이 남한 IT 벤처 기업인들에 대해 적극적인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것을 미루어 보면 북한에도 ‘디지털 지도층’(Digital Leadership)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즉, ‘인터넷을 중심으로 발전하는 현재의 통신패러다임에 평균 이상의 기술적 이해와 사활적 이해관계의 인식을 가지고 이를 국가경제운영에 반영하거나 반영하려는 의도를 가진 지도층’이 대두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관찰이 사실이라면 가장 큰 의미는 북한의 지도층도 역시 상호의존적 세계체제의 특징인 외부변화에 대한 민감성과 취약성을 보이며 그에 상응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IT 건설에 대한 의지는 최근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자 찬물을 뒤집어 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IT 건설에 대한 의지는 미래 지향적인데 반해 만약 테러지원이 있다고 한다면 그 것은 과거 지향적인 것이라는 사실이다.

북한의 통신망과 전화보급률은 우리의 30년 전 수준과 유사하다. 홍수 등 자연재해가 심각했던 지난 95년 이후 전화보급은 정체되어 현재 110만 선 정도가 가설되어 있다. 즉, 인구100명당 전화보유자가 5명도 안되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들은 대개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도시에 몰려 있으며 개인용으로 가설된 것은 7만 선도 안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가장 값어치 있는 공헌은 통신망 현대화일 것이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북한에서의 소프트웨어 제작하청사업 등은 진정한 의미의 IT 경협이라 볼 수 없다. 이는 북한의 특수한 일부 산업구조를 이용한 지엽적이고 일시적인 비즈니스라고 봐야 한다.

북한의 현재의 낙후성이나 폐쇄성에 조울증을 버려야 한다. 중국은 좋은 선례가 된다. 중국이 현재의 수준까지 IT 개발에 역점을 두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 92년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심천특구 등의 방문을 통해 개혁ㆍ개방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 이른바 ‘남순강화’(남순강화)다.

북한은 중국보다 작으며 의사결정이 더 소수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적인 해프닝이 일어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 김정일 위원장이 지난 1월 중순 중국 방문에서 군부나 당이 아니라 상해 푸동지구의 컴퓨터공장, 증권거래소 등을 방문했다는 것은 북한의 IT 전략과 관련해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를 굳이 비유한다면 ‘김정일의 남순강화’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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