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멈춰...정어리 등으로 만들어 사용 "옷에 비린내"

북한사회를 강타하기는 식량난보다 생필품난이 먼저였다. 일상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물건의 하나인 비누 부족은 90년대 이전에도 고질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80년대까지는 북한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지방 공장에서 만든 비누나마 5인이상의 가족은 매달 2장, 그 이하는 1장 정도 배급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서면서 돼지비계 기름도 구하기 어려워지면서 비누공장이 거의 가동을 멈추었다. 신의주, 평양, 함흥 등의 화장품공장에서 수선화 ·압록강· 해당화 ·장미· 봄향기 등 예쁜 이름으로 나오는 양질의 비누는 일반 주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된 셈이다. 외화를 가진 부유층은 외화상점에서 일본이나 중국에서 수입해 온 비누를 사 쓴다. 북한의 화장품공장에서 나오는 비누를 공급받는 계층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 가정에서는 가내수공업으로 만든 비누를 장마당에서 사 써야 한다.

장마당에는 온갖 종류의 비누가 나와 있다. 쌀겨나 옥수수눈 등에서 기름을 짜 만든 비누가 있는가 하면, 97년경부터는 북한이 자랑하는 최대 목욕탕 창광원에도 나타난 정어리비누도 널리 쓰인다. 정어리 대가리와 내장을 푹 끓여 죽처럼 풀어지면 가성소다(수산화나트륨)를 넣어 비누화반응을 시켜 만들어낸 것이다.

막상 이 비누를 쓰면 비린내가 심해 옷을 빨고도 며칠간 물에 담궈놓아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함남 신포, 홍원, 낙원 등 정어리가 많이 나는 해안지방에서 만들어져 장마당으로 나가지만 95년경에는 함흥의 가성소다공장도 멈추면서 푸르스름한 중국제 가성소다를 사다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비누값이 폭등했다.

그러다 보니 장마당에는 10X10X50cm의 대형비누가 나타나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도 했다. 알고 보면 중국산 비누를 녹여 거품을 낸 뒤 부풀려 만든 것으로 물속에서 허망하게 사라져버리는 거짓말 비누다. 톱밥비누, 진흙비누, 카바이드비누 등 중국산 비누를 녹여 얇은 비누층 속에 이물질을 넣은 엉터리 사기비누도 갖가지로 나온다. 그래서 비누 심부름만은 아이들에게 맡길 수 없고, 주부가 직접 나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관찰해야 속지 않는다.

어머니들이 자녀들에게 전수하는 비누를 아끼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빨래감을 맹물에 넣어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빨아 헹군 다음 비누칠을 하면 비누를 절반은 절약할 수 있다는 식이다. 수돗가나 강가 등 남들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빨래하는 것은 금물이다. 꽃제비 아이들이 염치없이 냉큼 갖다쓰거나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 빌려 달라고 하면 거절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장마당에서도 비누를 사 쓸 수 없는 집은 옛날식으로 양잿물을 만들어 쓴다. 이것으로 신체를 닦을 수는 없으므로 북한에서 20호라고 부르는 머리의 ‘이’(蝨) 문제가 지금도 심각하다. 대형 병원에서조차 비누를 제대로 쓸 수 없어 소독이 안 된 누더기를 쓰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샴푸"나 "린스" 등의 머리세척제를 써본 사람은 평양에서도 흔치 않다. 지방 사람들은 거의 그런 물건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비누값이 폭등해 요즘에는 집에서 만든 비누도 10원에서 30원 정도고, 중국산은 50원에서 60원 사이에 팔려 나가 노동자 한달 월급으로 중국제 비누 한 장 사고 나면 몇 푼 남지 않는 형편이어서 비누는 그 자체로 고급품인 셈이다.

세수비누를 따로 쓰는 가정도 드물다. 시골 총각은 장가갈 때나 화장비누를 만져본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빨래비누 한 가지로 모든 세척을 해결해야 하는데, 검은 솥을 닦거나 빨래를 전담해야 하는 주부들의 고통이 누구보다 크다.

/김미영기자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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