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의 아들"과 "일본 관광객"

예술을 한답시고 밤이면 평양거리를 배회하는 유한 청년의 하나였던 나는 95년 어느 봄날 저녁, 친구들과 함께 고려호텔 1층 커피숍에서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우리 뒷자리에서 20대 후반쯤 돼 뵈는 청년의 귀에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영감 참 안 됐어" "부장 영감은 요즘도 그러고 있더라구..." 운운.

대화의 상대는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머리칼이 히끗히끗한 남자였는데 청년은 시종일관 반말로 하대했다. 되려 중년남자가 그에게 예의를 갖춰 말하는 것이었다. 얼핏 겉모습을 보니 호텔에서 숙식하는 재일교포 청년같았다. 크지 않은 키에 짧은 머리, 검정 양복을 입고 있었다. 나이에 비해 조숙한 인상을 주었다. 나는 그의 정체가 몹시 궁금했다.

그때 호텔 정문쪽에서 젊은 사람이 빠르게 걸어오더니 문제의 청년에게 귓속말로 뭔가 소근대는 것이었다. 청년은 일어서더니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나는 접대원에게 저 청년이 누구인지 물었다. "아직 모르세요? 선생님의 아들이예요. 여기 자주 오거든요"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의 아들"이란 평양 중심가를 들락거리는 이들간에 김정일 아들 김정남을 이르는 은어로 통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싶었다.

고려호텔 지하 바(bar)나 커피숍의 접대원들 사이에서 김정남의 평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 몰래 자주 중국관광을 다녀온다거나 매사에 독선적이라는 등 권력자의 가족답게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곤 했다.

도미니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들어갔다가 중국으로 추방되는 김정남의 모습에 많이 놀랐다. 한편으로 평양에서의 기억을 새삼스럽게 한다. "작은 장군님"이라고도 불리우던 그가 불법행위로 세계 언론에 포커스를 받는 모습이 그리 유쾌할 리 없다. 그는 일본여행은 딴 데처럼 쉽지 않다고 툭 털고 말지 모르지만, 북한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청년기를 보냈던 나의 입장에서 최고권력자의 아들이 위조여권과 국제법위반이라는 오명으로 세계무대에 슬쩍 나타났음이 간단한 사건일 수는 없다. 고려호텔 언저리에서 우리들끼리 입방아찧던 때와는 또 다른 비감으로 다가온다.
/ 유지성·35·평양음악무용대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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