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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황태자 김정남’의 희극적 데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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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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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은 북한 안팎에서 매우 비밀스러운 존재였다. 그의 움직임은 북한 관찰자들의 주목 대상이 됐지만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에 관한 언급은 북한의 언론매체에도 등장한 적이 없다. 그런 그가 최근 한국과 외국 언론에 잠시 오르내리는가 싶더니 급기야 일본 불법입국으로 세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게 됐다.

‘황태자’의 국제무대 데뷔치고는 모양이 우스꽝스럽게 돼 버렸다. 최고지도자의 장남이 위조여권을 사용하다 망신을 당한 희극적 사건이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있는 북한의 이미지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가 문제다.

작년 8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평양을 찾은 한국 방문단은 버스가 주체사상탑 부근을 지날 때 깜짝 놀랄 말을 들었다. 안내원이 한 건물을 가리키며 “김정일 장군의 장남 김정남 동지가 설계한 것”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북한 당국이 김정남의 존재를 대내외적으로 알리려고 작정한 것이 분명했다. 최근에는 북한당국이 탈북하다 붙잡힌 사람을 풀어주면서 “이게 다 김정남 동지의 은덕”이라는 말을 덧붙인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김정일 위원장(1942년생)은 내년이면 회갑이다. 그가 공식적으로 후계자로 지명된 것은 만32살 때인 1974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였다. 그러나 사실상 후계자로 내정된 것은 이보다 최소한 2년 전인 1972년, 김일성 주석 회갑 때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이때 김정일 위원장은 만30세였다. 지금 김정남의 나이와 같다. 김 위원장으로서도 후계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가 됐다는 정황들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김정남은 북한의 정보기술(IT) 정책을 총괄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컴퓨터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1월 아버지의 중국 상하이 방문 때 수행했다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다. 지금 북한이 가장 주력하고 있는 경제개발 전략은 IT개발이다. ‘디지털 지도층’이 북한에 형성됐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남한의 IT 전문가들은 비행기 표까지 사 주면서 초청해 갈 정도다.

김정남은 아버지의 각별한 애정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일곱 살에 어머니(김정숙)를 여의고 가정적으로 외롭게 자란 김정일은 자신과 비슷한 성장기를 지나는 장남에게 애틋함을 느꼈을 법하다. 김정남은 어릴 적부터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성혜림)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이모(성혜랑)와 외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외모도 아버지를 쏙 빼 닮았다.

김정남은 “남조선 통일을 염두에 둔다면 교육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받아야 한다”는 북한당국의 판단에 따라 열 살 남짓 때 스위스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가 모스크바로 옮겨 프랑스대사관 부설학교에 다녔다. 일찌감치 ‘제왕 수업’을 받으면서 자본주의 문화에도 익숙해진 것이 그의 ‘자유분방함’을 키웠을 것이다.

평양의 상류층 출신 탈북자들은 김정남이 고려호텔 등에 출입하면서 ‘작은 장군’ 행세하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평양에서 그의 별명은 ‘선생님의 아들’로 통한다고 한다.

김정남이 아버지에 이어 3대에 걸친 권력 승계 준비를 실제로 하고 있는지, 또 그가 어떤 자질의 인물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의 이번 행동을 ‘철없는 황태자’의 객기 부리기로 치부하기 어려운 정황들도 없지 않다. 특히 그가 북한의 공인 신분이며 이미 수 차례 일본을 드나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 당국이 공항에서 그의 입북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신속히 사건을 매듭지은 점 등은 이번 사건의 물밑에 은밀하고 복잡한 어떤 작용이 개재돼 있을 가능성도 보여준다.

그러나 내막이야 어찌 됐든 이번 사건이 국제사회에 주는 의미는 복잡할 게 없다. 북한은 정말 이상한 나라,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는 사실을 거듭 확인시켰을 뿐이다. ‘로열 패밀리’의 도덕성 확립 없이는 북한의 개혁은 불가능할 것이다. 제가(齊家)와 치국(治國)은 별개일 수 없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장 h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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