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렁크에 100달러짜리 지폐가 가득 채워져 있었고, 지갑은 달러·엔화 고액권으로 두툼했다. 손목엔 다이아몬드가 달린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

김정남이 지난 1일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된 순간을 나리타공항 관계자들은 이렇게 전했다. 한눈에도 돈많은 부호라는 느낌이 드는 차림새였다는 것이다.

그가 싱가포르 출발 JAL(일본항공) 편으로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것은 지난 1일 오후 3시31분이었다. 아시아계 승객들 틈으로 통통한 체격의 김정남이 가족으로 보이는 3명의 일행과 함께 입국 카운터로 들어섰다.

176㎝가량의 키에 비만한 몸집. 짧은 스포츠형 머리 스타일, 가는 금속제 안경을 낀 그는 흰 티셔츠에 갈색 조끼, 검은 바지의 관광객 차림이었다.

문자판에 보석이 박힌 롤렉스 시계를 찼으며, 손가락에도 ‘많은’ 반지를 끼고 있었다. 동행한 여성도 루이뷔통 가방과 순금 목걸이를 착용하는 등 한눈에 부유함을 느낄수 있었다고 공항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들이 입국심사 카운터에 여권을 제출한 순간 직원은 위조여권 소지자가 적발됐음을 뜻하는 부저를 울렸고, 미리 입수한 정보에 따라 대기중이던 요원 5~6명이 이들을 에워싸고 체포했다.

남성은 의아한 표정으로 “무엇 때문에?”라고 일본말로 묻기도 했으나 저항하진 않았다.

이들은 곧 나리타공항 2층의 입국관리국 취조실로 연행돼 통역을 통해 7시간가량 조사를 받았다. 김정남은 시종 당당한 자세로 자신이 김정일(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장남임을 밝혔으며, “도쿄엔 디즈니랜드를 보러왔다”고 진술했다.

그는 “14~15세 때도 도쿄 디즈니랜드를 관광한 일이 있다”고 말했으며, 이번에 도쿄에 오기 전엔 프랑스 파리를 거쳤다는 진술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조사 도중 영어로 “배가 고프다”며 지갑에서 1만엔짜리 지폐를 꺼내 음식을 사다줄 것을 요구했다. 지갑엔 1만엔권과 달러 지폐가 두께 3㎝나 들어있었다고 한 신문은 전했다.

공항 직원이 연어구이와 불고기 도시락을 사다주며 거스름돈을 주자 “거스름돈은 팁”이라며 되돌려주기도 했다.

조사는 심야에 끝나 이들 4명은 불법입국자들이 일시 수용되는 이바라키현의 ‘동일본 입국관리센터’로 옮겨져 첫날 밤을 보냈다.

일본 법무당국 관계자는 이들에게 “특별대우를 하진 않았다”고 밝혔으나 일반 수용자들과 격리하는 등 상당한 배려를 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동경=박정훈특파원 jh-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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