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달 중 세종연구소 소장

송 영 대 전 통일원 차관

정 종 욱 아주대 교수·전외교안보수석

6월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은 분단 55년 만에 남·북의 정상이 처음 만나는 역사적인 자리이다. ‘남·북 정상회담, 이렇게 하자’ 시리즈를 마치면서 이번 정상회담의 전망과 유의해야 할 사안 등에 관해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좌담을 마련했다. /편집자

▲정종욱=94년 정상회담이 이뤄지지 못해 이번 회담에 대한 국민 기대가 더 높다. 북한과 미국, 일본간의 관계가 개선되고,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으며, 중국도 리펑(이붕)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을 계기로 최고위층의 교환 방문을 재개할 것 같다. 북한은 이탈리아와 수교하고 호주와 복교했고 조만간 필리핀과도 수교한다. 주변의 다양한 변화 속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한반도 평화정착, 통일로 이어져야 한다는 기대도 크다.

▲김달중=이번 회담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 해결 원칙’의 계기가 될 것이며, 정상회담 이후 민간차원의 교류가 당국 관계로까지 균형적으로 발전하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 동안 동북아 지역에선 안보·경제 등의 분야에서 다자(다자)간 협력체제가 결여돼 있었는데 이번 회담을 계기로 동북아에서도 다자 협력이 발전되고, 지역국가간의 정상화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송영대=과거 남·북한은 총리회담, 차관급회담, 실무회담 등 여러 회담에서 적지 않은 합의서를 타결했으나,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교착 상황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번에 쌍방의 실권자들이 만나 민족의 현안과 장래를 협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남·북 문제를 풀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이번 회담은 당사자 해결 원칙을 되살려 이를 바탕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어나가는 새로운 축을 형성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정종욱=북한이 회담에 응한 것은 그 동안 미국,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미사일 문제와 일본인 납치문제 등을 둘러싸고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우회전략 차원일 것이다. 이번 회담은 ‘비료 등 농업분야 지원,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위한 지원’을 밝힌 김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북한은 경제적 실리도 생각했을 것으로 본다.

▲김달중=북한은 그 동안 추구해왔던, 사상과 군대를 중시하는 노선만으로는 강성대국을 만들 수 없으며, 과학기술과 경제가 발전해야 김정일 정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일종의 정책기조의 변화가 있었다고 본다. 김일성이 통일을 완수하지 못했으니 아들인 김정일이 계승, 달성해야 한다는 이른바 ‘세습 권력이양’의 논리도 정상회담에 응하는 데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송영대=대(대)서방 접근의 여건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도 깔려있다고 본다. 그 동안 미국과 일본뿐 아니라 중국·베트남 등의 우방국가, 북한이 접근을 시도해온 EU, 호주 등 많은 나라들이 남·북대화를 강력하게 종용해왔다. 이를 염두에 두면서 남·북정상회담을 대미 협상을 강화하기 위한 카드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김정일의 통일지도자상을 부각시키는 데 목적도 있다. ‘조국통일 3대원칙’을 제시했던 김일성의 유훈을 관철, 자신이 통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정종욱=북한이 회담에 응한 여러 배경을 감안하면서 우리가 회담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회담 성공에 대한 지나친 부담감은 회담을 원만하게 풀어나가기 어렵게 만들고 북한이 역이용할 수도 있다. 극적 타결을 기대하거나 새로운 제안을 내놓은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북 기본합의서 등 기존 합의를 재확인할 필요가 있고, 적어도 부인하지 않아야 한다. 다음 회담 개최 합의도 대단히 중요하다. 첫 회담은 탐색전이라 후속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이번 회담에 성과가 있어도 의미가 감소될 것이다.

▲김달중=남·북한 관계 발전에 있어 단기, 중기, 장기적 차원으로 시각을 구분했으면 좋겠다. 달성 목표도 구체적인 것과 포괄적인 것을 구별하는 게 전략차원에서 필요하다. 단기적이며 구체적인 목표는 그 자체가 중장기적 포괄적 목표의 수단이기도 해야 한다. 그런 연관성 없이 단기적인 데만 집착하면 궁극적인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다.

▲송영대=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북한은 우리를 실제 대화 상대로는 인정하지만 국가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를 계속 묵인하면 우리의 정체성 확보가 훼손될 수도 있다. 북한은 평화공존을 분단고착이라면서 연공연북(연공연북)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이 같은 정책을 바꿔 평화공존의 문턱으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정종욱=북한이 주장해온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철폐 문제, 통일논의의 자유로운 보장 등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전달하는 것이 오히려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진솔하게 말하는 게 오히려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본다. 첫 회담에서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으나 밝힐 것은 밝히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에너지, 농업, 사회간접자본 시설 부문에서의 협력문제나 이산가족 문제는 어느 정도 실질적인 성과가 가능하다고 본다.

▲송영대=대북 지원에서 상호주의 원칙은 분명하게 지켜야 한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사회간접자본 시설을 지원하면서 인도주의적 분야, 평화정착 분야에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얻어내야 한다. 북한은 군산(군산) 복합체로, 경제여건이 나아지면 군 전력 강화로 연결될 수 있다. 때문에 에너지 지원은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통일방안도 준비해 북한이 고려연방제를 들고 나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

▲김달중=협상 범위를 넓게 가져가야 정상회담 이후 정부간 후속 실무협상을 상설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의제가 마련돼야 한다. 정상회담은 포괄적 의제에 대해 두 정상이 격의없이 의견을 교환하는 게 큰 수확이다. 이것이 신뢰구축의 기반이 된다. 그러나 구체적인 것에 합의하지 말라는 건 아니다. 평화선언, 이산가족 면회소 설치, 경협 등에 대해선 구체적인 합의가 있을 수 있다.

▲정종욱=정상회담에선 미리 정한 의제만 논의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특히 북한에서 김정일의 위상을 고려하면 서로 편리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이번에 남·북간 직접대화 통로를 마련하는 것도 성과가 될 수 있다. 가령 서해 교전처럼 군사적인 긴장이 우발적으로 발생할 경우 군 당국자 차원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상설 대화채널이 필요하다.

▲송영대=보도를 보니 준비접촉에서 “조국통일 3대원칙…”으로 시작되는 4·8 합의서(회담개최) 앞부분을 ‘포괄적 의제’ 합의문에 포함시킨다고 한다. 이는 정상회담의 목표이지 의제가 되기에는 부적절하다. 북한이 3대원칙을 고집하는 것은 미군철수(자주), 남측의 훈련중지(평화), 국가보안법 철폐(민족 대단결) 등을 요구하려는 의도라 할 수 있다. 이것이 정상회담에 응한 명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이다.

▲정종욱=미국은 이번 정상회담 결과가 북한 미사일, 핵문제 해결 노력과 어떻게 연계되는지에 관심이 있어 보인다. 우리의 대규모 경제지원 약속이 자신(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완화 카드를 희석시키는 것 아닌가도 생각한다. 정상회담을 한다고 해서 핵과 미사일 문제를 없던 것으로 할 수 없다. 핵과 미사일 문제를 거론해봄직하다. 남·북 정상회담의 무게가 북한과 주변국가와의 협상들을 압도해 버리는 감이 없지 않다는 것도 유념해야 한다.

▲김달중=한·미·일 공조는 사전에 협의하고 알려주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공조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우리의 이익과 주변4강들의 이익을 어떻게 조화하느냐와 주변 국가가 남·북한 발전에 순기능 역할을 하느냐를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주변 강대국은 현상 유지를 바라고 있으나 우리는 현상 타파(통일)를 바란다. 강대국을 어떻게 설득하느냐가 공조의 핵심이 돼야 하며 공조 방법도 대단히 신중해야 한다.

▲송영대=준비접촉 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입장은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기려는 것으로 보인다. ‘혁명의 수도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의 김대중 대통령에게 김일성이 제시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설명했다’고 하는 식의 명분적 근거를 마련, 북한 주민들에게 선전함으로써 대내통치에 이용하려는 측면이 있다.

▲정종욱=이번 회담은 김정일이 외부 세계에 데뷔하는 첫 공식행사라는 점에서 밥 먹고 악수하는 것 등 의전도 상당히 중요하다. 김정일의 결심에 의해 이뤄진 회담이라는 점에서 김일성에 대한 조문 등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일정은 강요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북한이 기대하는 것이 나오지 않을 경우 의전에서 까다롭게 할 수 있다. 때문에 북한으로 들어가는 우리측에 위험 부담이 더 많다.

▲송영대=북측이 취재단 규모를 줄이자고 한 것은 과거에도 그랬다. 북한의 취약점이 많이 노출될 것에 대한 우려와 함께, 남측 언론들이 북한에 불리한 기사를 쓰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언론 길들이기 작전일 수도 있다. 또 취재단 규모를 쟁점화함으로써 의제 부문에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김달중=70년 동·서독 정상회담 당시에는 양독간 인적·물적 교류가 상당한 수준이었고 동독 주민들이 서독 사회를 다 알고 있었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균형을 이루고 있어 동독이 체제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안정된 관계 속에서 정상회담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한반도는 다자간의 안보협력체도 없고 미·북, 일·북 수교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정종욱=70년대 유럽에선 사회주의권이 건재했으나 지금의 북한은 외교적 고립에 빠져 있다. 회담에 임하는 의도에 있어서 동독은 당시의 현상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강했으나 지금 북한은 외교의 무대를 확대하려는 국면이다.

▲송영대=동·서독은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방향에서 시작했으나 남·북한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입장이지만 북한은 우리 정부를 대화상대로 인정하면서도 대한민국의 국가성에 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취한다. 또 남·북한 교류도 취약해 회담 이후의 상황전개가 독일과 다를 것이다.

▲김달중=정상회담의 결과가 명확한지, 그 평가는 어떻게 내릴 것인지, 회담은 계속될 것인지 등이 회담 이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공동성명’이 불명확하면 서로 합의한 게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가 문제는 전체적으로 우리에게 잘 된 것인가를 봐야 한다. 합의내용이 불명확하거나 평가에 이견(이견)이 생길 때 재협상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실무협상이 열릴 수도 있다.

▲정종욱=이번 정상회담은 심각한 현안 타결을 위해 열리는 것은 아니다. 핵문제 타결을 위해 (카터에 의해) 주선된 94년 정상회담과는 다르다. 그러나 남·북한 모두 상징성을 감안해 회담의 불씨를 살려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정상회담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장기적인 전망은 결코 낙관할 수 없다. 미사일 문제로 미·북 관계가 악화되고 한반도에 긴장이 표출될 수도 있다. 우리 내부도 남·북 문제와 관련하여 진보와 보수간의 이견 표출과 대립이 보다 극명해질 가능성이 있으며, 국내 여론 수렴이 대단히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송영대=남·북한의 정책목표는 다르지만 서로 이익이 일치되는 부분이 있기에 일부 합의의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의 부분적 해결과 당국간 대화의 정례화를, 북한측은 경제지원 획득과 서방 접근 여건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합의가 이뤄져도 이행은 별개 문제다. 남한과의 경협은 북한에 경제재건의 기회이자 체제불안을 유발하는 위기요소이기도 하다. 회담 이후 남·북한 주민들의 대북관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북측 주민들의 대남관의 변화는 지도층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북한은 이를 의식하면서 경협을 추진할 것이다.

▲김달중=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국제진출이 탄력을 받게 된다. 외교가 더 활발해질 것이며, 북한의 국제 재정기구의 참여와 국제기구의 대북한 접근도 활성화될 것이다. 국제적 요인은 남·북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앞으로 미·중, 중·일, 중·미·일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 가느냐와 남·북관계는 직결돼 있다. 그런 주변국의 지정학적인 이해관계에 의해 남·북관계 변화의 속도나 형식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정리=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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