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정부가 불법입국 혐의로 체포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29)씨로 추정되는 인사와 동행인 3인을 4일 오전 전격적으로 중국으로 추방, 이 문제를 속전속결 처리하는 외교력을 과시했다.

문제의 남성이 체포된 이후 사흘만이며, 언론에 이같은 사실이 보도되기 시작한 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추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일본정부의 신속, 과감한 외교행보가 눈길을 끈다.

사안이 다르기는 하지만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총통에 대한 비자발급 문제를 놓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던 일본정부의 태도와 비교할 때도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김정남 사건'은 출범 일주일 밖에 되지 않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첫 외교적 시험대였다는 점에서 일본정부가 문제의 남성을 어떤 방식으로 처리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결과론적으로 고이즈미 정부는 `실리'에 기반을 외교전략에 따라 신속하게 김정남씨로 추정되는 인물을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는 중국으로 넘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일본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갖고 있지 않아 문제의 인물을 북한으로 곧바로 송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우회로를 거친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일본정부의 실리외교가 두드러진 대목은 문제의 남성을 추방하면서 그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은 점이다.

이는 명색이 김정일 위원장의 장남이라는 사람이 돈을 주고 사들인 위조여권을 이용해 일본에 불법입국했다는 사실을 일본정부가 나서 확인, 공개할 경우에 김정일 위원장의 `체모'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배려' 차원으로 보인다.

일본정부로서는 문제의 남성이 `김정남'씨일 가능성만 남겨둔 채 이 문제를 해결하면 북한이 고마움을 느껴 앞으로 북.일 수교교섭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임할 것을 기대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외교당국자들은 '이번에 우리가 북한에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며 `김정남 사건'을 북.일 관계개선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감추지 않고 있다.

앞으로 이번 사건이 북.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는 두고 볼 일이나, 일본의 이같은 `배려외교'로 인해 북.일관계에는 오히려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70년대 초 요도호기를 북한으로 납치했던 일본 적군파 간부의 자식 3명이 오는 15일 일본으로 귀국하기로 돼 있는 등 북.일간에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한 물밑교섭도 좀더 표면화, 가속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하튼 고이즈미 정권이 출범한지 불과 일주일만에 `김정남사건'을 일단 큰 잡음없이 처리해 냄에 따라 일단 북.일관계가 큰 격랑에 휩쓸릴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도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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