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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50돌…종군기자 미하일로비치씨 당시 회상 “50년 6월25일 오전 평양 사이렌… 열달간 습기찬 지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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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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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정병선기자】 “김일성은 휴전안(안)에 서명할 때 흥분된 표정을 감추고 담담한 자세를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

러시아 모스크바시 레닌스키가(가)의 한 아파트에 사는 전 타스통신 한국전 북한 종군기자 오레호프 보리스 미하일로비치(72)씨는 53년 한국전 휴전 당시 김일성의 서명 장면을 취재한 기자는 자신과 프라우다지의 톨치코프 기자 두 명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김일성 휴전안 서명 장면 외에도 전쟁이 발발했던 6월 25일 당시 평양 모습, 김일성이 기차로 모스크바를 첫 방문하는 장면, 전쟁 후 맞은 광복절날 해방탑에 헌화하는 북한 주민들, 파괴된 시가지 모습 등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며 자세히 설명했다. 그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중국의 펑더화이 장군을 단독 인터뷰하는 등 특종 기사를 많이 발굴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미하일로비치씨는 모스크바대 동방학부 한국학과를 졸업하고, 49년 9월부터 북한 김일성대학에서 한국어 연수를 받다 타스통신 평양 특파원으로 공식 발령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전쟁 발발일인 50년 6월 25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휴일이어서 오전에 친구들과 평양시내를 산책했습니다.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고 사람들이 대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전쟁이 난 줄도 몰랐어요. 러시아 대사관으로부터 ‘집에 은신하라’는 통보를 받고서야 전쟁이 났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미하일로비치씨는 그후 4년을 평양에서 보냈다. 전쟁이 치열하던 10개월 동안은 지하 벙커에서 생활했다. 그는 “여름에 습도가 높아 평양에서 고생 많이 했다”며 “비가 오는 날에는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벙커 속에서 손으로 기사를 쓴 뒤, 러시아 대사관으로 가지고 가 텔레타이프를 쳐 기사를 전송했다”고 말했다. 그는 “말라리아에 걸려 평양에서 30km 떨어진 소련군 병원으로 후송돼 일주일 이상 앓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전쟁기간 평양 사람들은 ‘슈팅 스타스’로 불리는 F-80 미 공군기의 폭격을 가장 두려워 했습니다. 주민들은 주로 저녁에만 이동했어요. 폭격이 거세지면서 평양시내는 매일 등화관제가 실시됐습니다. ”

전쟁이 끝나고 54년 5월 모스크바로 돌아갈 때까지 그는 평양 각지를 찾아 다니며 파괴된 현장을 생생히 기록했다고 했다.

미하일로비치씨는 57년 타스통신사에서 노보스티 통신사로 옮겼고, 67년부터 프라우다지로 전직, 68~71 뉴욕 특파원, 71~75년 베이루트 특파원, 81~85년 오스트리아 특파원을 역임했다. 작년부터는 슬로보지 고문으로 있다.

그는 “한국 일부 단체에서 나를 초청하려 했으나, 여러 사정으로 번번이 좌절됐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을 방문, 북한 지역에서 겪었던 한국전의 생생한 경험을 증언하고 싶다”고 말했다.

/bs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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