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예란 페르손 스웨덴 총리가 1박2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3일 서울에 도착했다. 그의 남북한 연쇄 방문은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미·북관계의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페르손 총리는 2일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주최한 만찬과 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잇따라 남·북간, 미·북간 대화를 촉구했다. “빠른 시일 안에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미사일 분야에서 EU가 미국의 해결 노력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는 페르손의 언급들이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이 “2003년까지 미사일 발사 유예”, “남북정상회담 개최 희망”을 밝힌 것은 남한과 미국에 대해 ‘대화 의지’를 내비치면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전술적 측면이 엿보인다. 북한은 1999년 미국과의 미사일 회담에서 미사일 발사 유예의 시한을 못박지 않고 단지 ‘미국과 대화하는 한’이라고 했을 뿐이다.

따라서 이번에 ‘2003년’이라는 시한을 정한 것은 북한으로선 일종의 배수진을 친 셈이다. 미국에 대해 빨리 미사일 회담을 타결짓자는 강력한 촉구인 셈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다시 내비친 것은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이번 발언 시점은 주목할만 하다. 미국에선 부시 행정부가 등장한 이후 대북 강경발언이 쏟아졌고, 현재 대북정책의 확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칫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이 난관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전망까지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같은 시기에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지를 거듭 밝힌 것은 미국의 대북 포용정책 지속을 유도하겠다는 뜻도 포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번 페르손·김정일 회담에서 또 한가지 눈에 띄는 것은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논의다. 북한은 지금까지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려왔고, 북한에 인권문제가 없다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문제를 향후 서방 국가와 논의해나갈 가능성을 비침으로써 개방 제스처를 내보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없지만 페르손 총리는 인권 논의를 경제지원과 연계했을 수도 있다.

/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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