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의 새판짜기…한국외교, 시험대 위에
중장기적 근본대책 세워야

최병묵 정치부차장대우

한반도 주변 기류가 심상치 않다.
올해초 정권교체를 이룬 미국은 2일 미사일방어체계(MD, 국가미사일 방어체계인 NMD와 사실상 같은 의미) 강행을 선언했다. 잘 알려져있듯이 NMD는 한반도의 이해당사국인 중국, 러시아, 북한이 모두 반대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 국가의 반발이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올해에도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되지 않은 북한이 자신들의 책임은 망각한 채 불쾌감을 대외정책에 반영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불투명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는 더 문제다. 북한의 김일철(김일철) 인민무력상이 4월말 러시아를 방문, 군사협력 강화에 합의한 시기를 즈음해 일본의 교토 통신, 영국 선데이 타임즈는 잇따라 러시아가 최신형 무기를 북한에 판매키로 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최근 10년 사이 최대 규모의 군사훈련을 작년에 실시했다는 사실과 맞물려 우리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일본과 중국은 또 어떤가. 일본은 자신들의 제국주의 침략사를 왜곡하더니 이제 자위대를 ‘자위(자위)’의 차원을 넘어선 정식 군대로 전환하려고 하고 있고, 중국은 1월 북한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한데 이어 장쩌민(강택민) 주석의 방북을 추진하는 등 북한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밖에 저작 및 특허권 보호와 관련한 우선협상 대상국 지정(미국), 막무가내식 마늘 구매 압력(중국), 폴리에스터 단섬유에 대한 반덤핑 조사 개시(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통상 압력도 전에 없이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주변 4대 강국들의 자국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이익이 그들의 최우선적 잣대다. 이런 움직임들은 우리, 특히 한국 외교에는 심각한 도전적 요소다. 우리는 지금 미국·일본과 동맹·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중국·러시아와 교류의 폭을 넓히는 외에 북한을 국제무대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3중고(삼중고)’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런데 최근 상황은 꼬이기만 하고 제대로 풀려나갈 기색이 없다. 순풍보다는 역풍이 심하다. 이 때문에 한국과 이들 개별 국가간의 양자(량자)관계도 순탄치 않다. NMD, 통상 등 국제 현안과 관련해 ASEM(아시아 유럽 정상회의) 외무장관 회의(5월), ARF(아세안 지역포럼·7월), APEC(아태경제협력체·10월) 등 다자(다자)관계에서 이해를 달리하는 국가간 ‘복잡한 짝짓기’가 가시화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간도 많지 않다. 미국은 곧 대북정책을 확정할 것이고, 일본 새 정부의 대외정책 변화여부도 가까운 시일안에 판가름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몇 개월이 한국 외교의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시기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도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응전해야 하는지에 대해 현재로선 정답이 없다. 굳이 찾을수 있는 정답이라면 국가이익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다만 사전 준비가 철저히 이뤄져야 하겠다는 것이다. 한·러정상회담 공동성명에 NMD 관련 표현을 넣었다 미국에 가서 사과해야 한다거나, 일본의 교과서 왜곡에 항의하기 위해 주일대사를 소환했다가 명분없이 귀임(귀임)시키는 등의 무계획한 외교적 실책을 막아야 한다. 파장과 명분을 고려해서 심사숙고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준비된 외교’다. 강대국들의 외교정책 수립과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가능성이 있는 ‘유력 인사’들을 중·장기적으로 관리할수 있는 민관(민관) 합작 외교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그런 체계적인 노력의 흔적이 보이지 않아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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