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영화계에서 재일 조총련출신 영화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 최근 개봉한 '살아있는 영혼들'의 연출도 재일 조총련 출신 신예감독인 김춘송(46세)이 맡았다. 이 영화는 이제까지의 북한 영화중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고 컴퓨터그래픽을 본격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북한영화계에서 조총련출신 영화인들의 영향력이 증대되고 있는 것은 크게 두가지 이유에서 비롯된것으로 보이고 있다.

첫째로, 최신 제작기법과 세계적인 영화의 흐름을 일본 생활 경험이 있는 조총련 출신들이 북한 영화인들에 비해 빨리 감지하고 습득하는데 유리하다는 점이다.

북한은 80년대 후반 이후 경제적인 어려움과 세계적인 탈(脫)이데올로기 조류에 제대로 적응치 못해 10여년간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황을 맞이했다.

이러한 상황은 영화계에도 그대로 미쳐 제작편수의 감소와 제작기법의 낙후로 나타났는데, 북한영화계에서는 재일 조총련 출신 영화인들이 이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될 것으로 보고 이들의 역할을 키워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탐낼 '살아있는 영혼들'의 연출을 엄길선 조경환 등 북한의 '거장'들이 맡지 않은 것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조총련 출신 영화인들이 북한 영화인들에 비해 사고의 폭이 넓고 유연하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있다.

즉 사상성이 지나치게 강조돼 주민들로부터도 외면받는 사태에 이르게 된 북한영화의 체질개선을 위해서는 참신한 연출과 연기 등이 필요했는데 조총련 출신 영화인들이 이에 부합됐다는 것이다.

반일(反日)영화인 `살아있는 영혼들'이 이제까지와는 달리 김일성 주석의 항일빨치산 투쟁을 소재로 하지도 않았고 노골적이고 직설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기존 북한영화들과는 달리 간접적인 방법으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와관련, 김춘송 감독은 조선신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는 조선 인민들의 반일감정을 부추키자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양심적인 조선인이 무참히 학살된 사실 그대로를 여러사람들에게 전하는데 있다'며 기존 북한영화와는 연출방식을 달리 했음을 밝혔다.

북한영화계에서 활동하는 대표적인 조총련 출신 영화인로는 김춘송외에 3~4명이 꼽힌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김윤홍과 서신향은 톱 스타로 대접받는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김윤홍은 '민족과 운명'시리즈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역을 맡아 일약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는데, '야심가 음모가로서의 정체를 자기의 표정과 외모에 담아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독재자 박정희의 형상을 나무랄데 없이 신통하게 그려냈다'는게 북한 영화계의 평가이다.

금년 56세이고 '살아있는 영혼들'에도 출연했다.

'소박하고 진실하면서도 문화적인 연기로 특징 지어지는 배우'로 소개되는 서신향(53세)은 '민족과 운명' 제5부와 14~16부에서 작곡가 윤이상씨의 아내역을 맡았다. 지금까지 '민족과 운명'을 포함, ' 안중근 이등박문을 쏘다'등'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9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북한영화계에서 재일 조총련 출신 영화인들의 영향력은 앞으로 더욱 확대될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영화계에도 불어닥친 김정일 총비서의 '신사고'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와 참신한 아이디어를 이들이 어느정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북한 영화인들에 비해 참신한 시각을 가진 조총련 출신 영화인들이 북한영화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시대의 흐름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이다. 특히 개방정책을 선도하는 김 총비서의 입장에서는 이들이 더욱 필요하다. 따라서 앞으로 몇년내에 북한영화계는 신진들과 함께 재일 조총련 출신들이 주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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